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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전락한 ‘문화재 안전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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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6일 오후 2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古刹) 고란사. 삼국시대 창건된 사찰로 1984년 충남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됐다. 고란사 입구 대웅전(극락보전) 옆에 개 집이 눈에 들어온다. 개 집 안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고란사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 안전견인 진돗개가 개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등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충남도가 목조문화재 화재와 절도 예방을 위해 지난해 9월 배치한 ‘훈련견(문화재 안전견)’이다. 그러나 진돗개는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 않는다. 목에 줄이 묶인 채 개 집에서 주로 머문다. 고란사 김인규 종무실장은 “진돗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충남도에 안전견을 데려가라고 한 지가 한 달이 넘었지만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9월 초 도내 사찰과 고택(古宅) 등 문화재 10곳에 진돗개 5마리와 세퍼드 5마리 등 문화재 안전견 10마리를 배치했다. 안전견은 후각능력이 뛰어나 화재 발생시 연기를 조기에 탐지해 관리인에게 알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외부인이 침입하면 경보기능도 할 수 있다. 안전견 배치에는 개 구입비와 훈련비용 등을 합해 모두 3000여 만원이 들었다.

충남도 문화예술과 임경호 담당은 “생후 1∼2년 된 개를 6개월간 훈련시켰기 때문에 문화재 보호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견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사찰의 경우 개를 돌볼 틈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안전견은 6개월마다 화재 징후 감시나 외부 침입자에 대비해 훈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훈련을 제대로 시키는 곳은 없다. 천안시 안서동 성불사(문화재자료 10호) 김학균(57) 사무장은 “사찰 직원들이 모두 바빠 사료 주는 것 이외에는 개를 접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퍼드와 달리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새 주인과 친밀감을 갖기가 쉽지 않다. 고란사처럼 최근 사찰 주인이 바뀐 곳은 진돗개가 풀이 죽어있다.

안전견 훈련 전문가인 혜전대(충남 홍성) 박승철(57)겸임교수는 “진돗개는 주인이 바뀔 경우 주기적으로 함께 놀아주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리비용도 문제다. 안전견들은 고급 사료를 줘야 하기 때문에 한 달 사료비가 6만원이상 든다. 일반사료(월 3만원)의 배에 달한다.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亶)도 “사료값이 만만치 않다”며 올해 초 진돗개를 반납하기도 했다. 맹씨행단은 고불 맹사성(조선 초 재상) 고택 등 집터를 말한다.

충남도 이성호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지금까지 안전견이 배치된 사찰이나 고택에서 화재나 도난이 발생한 적이 없어 안전견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기회는 없었다.”며 “관리실태를 점검해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글=김방현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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