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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옛날 이야기 돼버린 인사동 '전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서울 인사동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골동품점, 고서점, 화랑, 전통찻집, 한정식집 등이다. 하지만 요즘 '전통문화의 거리' 는 빛이 빠르게 바래고 있다.

거리의 노점상들은 국적불명의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진 화랑, 고서화점들은 관광기념품 판매도 겸하고 있다. 보도로 진출한 판매대는 노점상 좌판과 합쳐져 어수선한 관광지 분위기를 빚어낸다.

지난 달에는 외국계 초대형 커피샵 체인 '스타벅스' 도 인사동길 한가운데에 문을 열었다.

기존 업소들은 점차 쇠락해가고 있다. 골동품 전문업체인 예랑방.보흥당.개성당 등의 간판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취급품목은 생활 도자기나 섬유공예품으로 바뀌었다. 삼보당은 지난해 아예 호떡집으로 변신했다.

화랑도 마찬가지다. 몇년전까지 화랑 밀집군을 이뤘던 SK빌딩 지하의 금호갤러리.가나화랑.나무화랑.서경갤러리.도올갤러리.동주화랑.데미화랑 등은 이미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다. 올해엔 안국갤러리.나무화랑.르네갤러리 등이 문을 닫았다.

뒷골목은 한식집이 주종을 차지하지만 카페와 노래방은 물론, 일식집과 이탈리아 식당도 성업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사동길이 영국 앤여왕 방문 등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젊은 층과 관광객의 유입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늘어나니 집세는 자꾸 오른다. 하지만 이들은 예술품을 구입하기 보다 커피를 마시고 관광기념품을 산다. 게다가 화랑이나 고미술상은 경제침체의 영향으로 불경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미술품 감식안을 가진 구세대는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의 김병욱 국장은 "스타벅스의 기습적 개관에 이어 햄버거 체인이 인사동 입점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변질되고 있는 인사동 거리의 특성은 완전히 사라질 것" 이라며 "서울시가 연내에 인사동을 '문화지구' 로 지정한다고 해도 기존 유흥업소를 철수시킬 수는 없다" 고 우려했다.

'전통문화의 거리' 를 살릴 묘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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