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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바둑의 체육화' 착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바둑은 두뇌 스포츠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뇌 스포츠도 '체육' 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한국기원이 오는 15일 바둑의 체육 전환을 위한 1백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한다. 바둑 관련 각종 단체와 프로기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발대식을 갖는다.

'바둑은 예도(藝道)' 라는 전통적인 시각을 버리고 체육단체 가맹을 통한 실리 챙기기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바둑의 체육단체 가맹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카드게임의 일종인 브리지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선보일 예정이고 서양장기인 체스도 1999년 세계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스포츠로 인정받았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바둑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올림픽을 꿈꾸고 있다.

일본은 이를 위해 일찍부터 조직적인 활동을 보여왔고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의 참가국 수를 현재의 50여개국에서 올림픽 기준에 맞는 75개국으로 늘리기 위해 아프리카에 바둑을 보급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이 운동의 주체인 일본기원이 최근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하면서 바통이 저절로 한국과 중국으로 넘어왔다. 유럽은 거의 모든 나라가 바둑을 두지만 기사 수가 적다.

미국도 역사는 깊지만 아직 초보적인 단계고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불모지에 가깝다.

한국은 이제 이런 나라들에 바둑을 보급하고 또 IOC를 설득하는 일에 직접 나서야 할 입장이다.

한국기원 한화갑 총재와 중국기원 천쭈더(陳祖德)주석은 이미 이런 문제에 대한 공동협력을 약속했다.

그런데 바둑 세계 최강인 한국에서조차 정체성이 모호하다면 어떻게 남을 설득할 수 있을까. 차제에 바둑을 체육으로 확실히 못박아 놔야 IOC와도 대화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한국기원의 주장이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정신적 측면과 함께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라는 스포츠적 측면이 있다. 축구.골프가 몸의 근육을 사용하는데 비해 바둑은 뇌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 학자의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바둑이 체육으로 전환되면 바둑 보급의 최대 장애였던 바둑 수련생들의 진학문제가 해결되고 우수 선수는 병역혜택도 받을 수 있다.

중국처럼 전국체전에 바둑이 추가되면 학교나 기관에서 바둑팀을 만들게 되고 국제대회 때는 국고보조도 받을 수 있다.

바둑이 그동안 내세워온 정신적인 영역을 내던지고 체육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일견 씁쓸하지만 한국기원측은 '그것만이 살 길' 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바둑이 스포츠가 된다면 기존의 프로바둑계는 시스템이 크게 변하면서 거센 회오리에 직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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