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더 보완돼야 할 리베이트 쌍벌죄 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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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철원보건소 공중보건의 이모씨가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뒷돈)를 챙긴 수법은 주도면밀하기 그지없다. 이전에 보건소를 다녀간 환자들에게 새로 병이 난 것처럼 가짜 처방전을 꾸몄다. 복용일수가 길고 약값도 비싼 혈압·당뇨병 위주로 했다. 약이 실제 팔린 만큼 리베이트가 입금되기 때문에 그는 직접 이 처방전을 들고 철원 일대 약국을 돌며 약을 사들였다. 정부가 약값을 전액 대주는 저소득층 환자들 명의를 빌렸기에 이씨 부담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1년7개월간 챙긴 돈이 무려 1억2300만원이다.

최근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공무원 신분이라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단독 개원의 등 여타 의사들의 경우 리베이트 수수로 적발돼도 딱히 적용할 법규가 없어 처벌이 쉽지 않았다. 정부가 약값 상승의 주범인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려고 이런저런 조치를 써봐도 먹히지 않았던 이유다.

정부가 리베이트를 준 제약사뿐 아니라 받은 의사·약사도 형사 처벌토록 하는 ‘쌍벌죄’ 도입을 추진한 건 그래서다. 당초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 의사·약사 출신이 많아 난항이 예상됐지만 다행히 23일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추후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10월부터 제도가 시행될 수 있게 된다. 비록 의원 입법으로 제출된 원안보다 형사 처벌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지만 그간 의료계의 반발로 도입 자체가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법 개정안 속에 임상시험 및 학술대회 지원, 기부 행위 등 갖가지 처벌 예외규정을 둔 부분에 대해선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달 기부 형식을 빌려 거액 리베이트를 챙긴 대형 종합병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무더기 제재를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런 방법들이 편법의 통로가 돼왔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엄정하게 다잡지 않으면 입법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재정, 더 나아가 국민 세금을 좀먹는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되도록 하자면 쌍벌죄 법안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