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위험한 MD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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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일자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의 말을 빌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다음달 방중(訪中)때 미사일방어(MD)계획을 반대하는 중국을 무마하기 위해 중국의 핵무기 증강을 반대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지하핵실험 재개도 '논의' 한다는 의사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조치는 미국이 그동안 중국과 다른 나라들에 대해 유지해온 핵무기 증강 반대, 모든 종류의 핵실험 반대라는 기존 정책을 바꾸는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 이틀후 미국 정부는 보도를 부인하는 성명을 냈지만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MD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MD를 순조롭게 추진하자면 러시아와 중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러시아는 공격용 핵무기의 상호감축을 조건으로 내세워 설득하고 있지만, 중국은 핵무기가 수적으로 미국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내세워야 한다. 따라서 중국엔 핵무기 증강과 핵실험을 용인하는 조건으로 설득해볼 생각이다.

여기엔 중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핵무기 현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할 수 없으며, 또 핵무기 증강을 허용해도 미국에 상당 기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조셉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은 MD의 성능이 아직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MD를 구축하려는 '고집 세고 비이성적인 욕망' 이 중국과 세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브루킹스연구소 중국 전문가 베이츠 길은 앞으로 중국이 MD를 피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미국과 관계가 나빠졌을 때 '불량국가들' 에 기술을 넘겨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랜드연구소의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이 MD를 의식해 앞으로 핵무기 현대화를 더욱 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경계할 것은 중국의 핵무기 증강이 주변국가들에 미칠 영향이다. 대만은 핵무기 개발 유혹을 더욱 강하게 받을 것이며, 중국으로부터 핵공격 사정권 안에 들어 있는 일본도 핵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핵강국으로 부상한 인도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1998년 5월 핵실험을 감행한 인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를 조만간 해제하는 등 인도를 MD의 중요한 협력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MD는 외부의 핵공격으로부터 미국과 우방, 그리고 해외파견 미군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MD로 인해 핵무기 개발 경쟁이 가열되고 그로 인해 세계평화가 위협받는다면 앞뒤가 바뀐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핵정책에서까지 일방주의로 나오고 있다.

핵무기와 MD를 합쳐 힘으로 압도하면 굳이 세세한 부분까지 합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MD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인지 아니면 MD 자체가 목적인지를 미국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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