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선발 경쟁 vs 가르치기 경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며칠 전 만난 고교 선생님들은 이런 넋두리를 했다. 중앙일보에 대한 섭섭함, 정부에 대한 쓴소리가 만만찮았다. 본지는 올 초 전국 고교별 3개 대학(서울·고려·연세대) 진학 실적을 보도했다. 이어 이달에는 고교별 수능 성적과 서울 196개 일반계고의 고교선택제 지원 경쟁률을 공개했다. 고교별 학력 차의 실상을 알려 ‘입시 오아시스’에만 집착하는 정부의 교육정책 문제점을 지적하자는 뜻에서였다. 정보에 목마른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에 달려가는 악순환도 끊어 보자는 판단도 했다.

그 파장은 컸다. 수능과 3개 대학 합격 실적 상위권을 특목고·자사고·비평준화 고교가 휩쓸었다. 언어·수리·외국어 3개 수능 영역 표준점수 합산 평균을 내보니 전국 100위에 서울 일반계고는 두 곳뿐이었다. 강남권 고교도 특목고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일반고는 난리가 났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송구함도 전하고 진솔한 얘기도 듣고 싶었다. 선생님들의 지적에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졌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뽑아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바보라는 얘기가 나왔다. 학교 노력도 있었겠지만 대원외고의 오늘도 속을 까보면 ‘가르치기’보다는 ‘선발’ 효과 덕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었다.

물론 나태해진 일반고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하지만 수업 좌표를 중간에 놓고 가르치기는 정말 힘들다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몇 배 이상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였다. 다시 생각해 보자. 출발선이 다른데 차별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진행 중인 학교 다양화는 학교 선택권 확대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20m 앞에서 출발한 특목고, 10m 앞에서 출발한 자율고 학생들을 일반고 학생들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일반고에 대한 역차별은 도가 지나치다. 국민 공통교육의 보루라는 명분으로 학생 선발권도, 교육 과정 편성권도, 교사 선발권(공립)도 거의 주지 않는다. 상위권대 진학 실적이 명문고의 잣대가 되는 현실에서 이건 일반고에 대한 고문이다.

교육의 기본은 잘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입학사정관제 확대 등 입시 손질에만 매달린다. 선발 경쟁 대신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룰이 공정해야 한다. 일반고에 학생 선발권을 줄 수 없다면 특목고 수준의 학교 운영 자율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그에 따른 책임은 가르친 성과로 평가하면 된다.

양영유 정책사회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