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의 매니어가 차린 '애니 진수성찬'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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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일본어로 매니어를 뜻하는 '오타쿠(お宅)' 는 한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에만 골몰하는 사람' 을 말한다.

어딘지 부정적인 어감이다. 우리도 '매니어' 하면 전문성은 인정해도 '사교성이 부족하고 어딘지 이상한 사람' 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무크지 『애니메이션 시크리트 파일』 (시공사.1만2천원)이라는 책을 보면 편견을 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여섯명의 매니어가 마치 난상토론을 하듯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해 자유롭게 쓴 글을 엮은 것인데 이들은 '골방' 족이 아니다.

만화평론가.투니버스 PD.일신픽처스 대표이사.애니메이션 마케터.월간 『뉴타입』편집장 등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을 현실에서 당당히 키워나가는, 힘을 줘서 얘기하건대 한국 만화.애니메이션계의 '동량' 들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골방 속 이야기' 는 주제도 다양하다. '이웃에 온 미야자키 아니메' (황의웅)같은 부담없는 읽을거리가 있는가 하면, '인터넷 속의 토끼도 꿈을 꾸는가' (이주석). '착각 속의 3D 애니메이션' (박찬균) 등 국내의 성공.실패 사례를 거론해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의 뇌에 미치는 영향?' (천창욱). '만화주제가의 작사가도 조작되었다!' (송락현) 등 일반 매체에서 접하기 힘든 글을 만날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일본 공안사법연구소 경찰학 선임연구원.TV 프로레슬링 해설자 등도 필진에 참여했다.

이 책을 기획한 시공사 송락현씨는 "매니어들이 단순히 자신의 취미에 매몰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영역을 개척해 한국 만화.애니메이션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고 설명했다.

30대 초반이 주를 이루는 이른바 '1세대 매니어' 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화제를 끌 만한 기획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16인16색' 의 목소리를 내다 보니 재미는 있지만 산만하다는 점이다.

이 무크지가 좀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논의의 장이 되려면 다음 권부터는 단일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는 짜임새가 필요할 듯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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