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역 낙서 "이제 그만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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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이 즐겨찾는 강촌역(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이 ‘낙서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역사(驛舍)와 승강장 등 거의 건물 전체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써넣은 낙서로 ‘도배’가 돼있다.

특히 1995년 낙석에 대비해 승강장에 만든 길이 2백48m의 피암(避岩)터널은 30여개 콘크리트 기둥이 모두 낙서로 빼곡히 채워져 있어 빈 곳이 없을 정도다.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는 젊은이들이 서로 무등을 태워주며 낙서를 했다.

역 이름을 알리는 역명(驛名)판도 낙서로 가득하다.역사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역사와 역구내를 연결하는 통로는 물론 화장실에도 곳곳이 낙서 투성이다.만화책 등 청소년들이 볼만한 책으로 가득했던 문고대에는 책이 사라진 대신 낙서로 채워졌다.

강촌역 부역장 김기옥(49)씨는 “95년 새 역사가 들어선 이후 역 자체가 거대한 낙서판이 됐다”고 말했다.

낙서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거나 낙서를 열심히 지웠던 강촌역 직원들도 이제는 포기 상태다.

피암터널 기둥의 낙서를 없애기 위해 서너차례 페인트칠을 새로 했고 역사안은 두달마다 특수 세제로 닦아냈지만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대형 스케치판을 달아 이곳에 낙서를 하도록 유도하거나 홍보도 하고 경범죄로 처벌하겠다며 경고방송를 수시로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낙서하는 현장을 발견해도 “낙서가 무슨 죄냐”며 항의하는 등 단속도 어렵다.

상부 기관에서는 왜 낙서를 방치하느냐고 다그치지만 3명의 인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이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외설스런 낙서만 눈에 띄는대로 지우고 있다.

부역장 金씨는 “지난해 역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89%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낙서도 청년문화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지만 낙서를 하는 청소년들에게서 시민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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