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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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2장 신라명신

"오르시지요. "

승려가 앞장 서서 안내하였다.

계단을 올라 툇마루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다다미방이 드러났다. 후원을 향해 난 방문은 열려 있었다. 활짝 열린 방문 바깥 후원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었고, 마침 울창한 숲에서 흘러내린 벚꽃들이 그 연못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슌묘 스님께서는 곧 오실 것입니다. 잠시 차나 한잔 하시면서 기다리시지요. "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듯 승려는 뜨거운 물을 다기에 넣었다. 금세 향긋한 차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승려는 익숙한 솜씨로 차를 우려낸 다음 잔에 따라서 내게 한잔을 권하였다.

나는 차를 마시면서 후원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짐작대로 이 건물은 승려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외부 인사들을 위한 객사인 듯 손님맞이의 접대용 가구들도 방안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반대편 안쪽에서 툇마루를 건너오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붉은 색이 감도는 승복을 입은 큰 체구의 승려 한사람이 방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으시지요, 손님. 제가 바로 슌묘입니다. "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슌묘는 그러나 체구는 당당하여 마치 씨름선수와 같은 면모를 갖고 있었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80세가 넘은 게이오대학 출신의 지식인이었으면서도 그가 무슨 무사처럼 보였던 것은 큰 체구와 시원시원한 말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다탁을 중심으로 마주 앉으면서 슌묘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작은 상자 속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우리는 명함을 교환하였다.

"보내주신 책은 아직까지 전부 읽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절반 가량은 읽어보았습니다. 이곳 오미지방은 당연히 처음이 아니시겠지요. "

"그렇습니다. "

내가 대답하자 슌묘는 크게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하기야 오미지방은 예부터 도래인들의 고향이라고 전해오는 곳이니까요. "

슌묘는 차를 마시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삭도로 민 머리가 아니라 바짝 짧게 자른 머리카락 때문이었을까, 날카로움보다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눈빛이었다.

이 사람이.

나는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면서 생각하였다.

1대 개조인 엔친(圓珍)으로부터 내려온지 1천2백년이 흘러 제1백62대에 이른 장리란 말인가. 그러니까 이 사람의 피 속에는 엔친의 혼이 흐르고 있다는 말인가.

"선생님께서 부탁해 오신 내용에 관한 말씀입니다만. "

잠시 인사치레의 가벼운 말들이 오간 후 슌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실은 저희측에서는 이제까지 한번도 이 비보를 밖으로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꼭 한번이었습니다만 20여년 전이었던가요. 교토국립박물관측에서 미데라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들을 특별 전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딱 한번 전시된 적은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사적으로 공개된 적은 전혀 없습니다. 때문에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 답신이 서너달 걸릴 만큼 늦었던 것은 저희 미데라 내에서도 의견들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분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신라명신(新羅明神)' 은 저희 절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보물이며 국보 중의 국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신라명신이 우리 미데라의 개조인 엔친스님께서 당나라에서 건너오실 때 난파 당한 배 속에 나타나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해준 수호신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신라명신은 절 외곽에 있는 '신라선신당' 에 모셔져있던 신불인데 저희가 수습해서 금당 안에 보관하고 있는 것도 신라명신이 갖고 있는 엄청난 가치 때문인 것입니다. 문화적 가치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상징적 의미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손님. '신라명신' 은 바로 우리 미데라의 상징 그 자체인 것입니다. "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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