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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과 경제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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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천안함 침몰은 국민 모두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고, 여기에 더하여 경제학자에게는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 국가안보가 군사적 의미에서 한국 국토를 지켜내는 개념이라면, 경제안보는 경제라는 측면에서 한국 경제를 지켜내는 일을 의미한다. 국가안보의 1차적인 목표가 외부로부터 오는 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일이듯이, 경제안보의 1차적인 목표는 한국경제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은 온 사방에 지뢰처럼 널려 있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촘촘하게 연결된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다. 한 국가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경우 불과 몇 시간 만에 전 세계의 금융시장이 타격을 받는다. 한 국가의 경제위기는 전염효과를 통해 인접 국가나 유사 상황 국가의 경제위기를 야기한다. 자원부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는 한국은 치명타를 입는다.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이 갑자기 불신으로 바뀌면 한국경제에는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몰아친다. 외부의 병균이 신체 중에서 가장 허약한 부분을 골라 침투하듯이 경제적 외부 충격이 있는 경우 가장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부분은 우리 경제 중에서 가장 허약한 부분일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허약함이 외부침투를 유발할 수도 있다. 경제안보를 위해서는 1차적으로 한국경제에서 허약한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금융, 특히 은행부문의 미약한 경쟁력, 공룡처럼 비대해진 공공분야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성, 경직된 노동시장제도가 만드는 각종 부작용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최근 들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재정건전성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4대 강 사업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우리의 국가부채는 불과 2년 사이에 70조원이 훨씬 넘게 증가했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은 우리 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태는 다시 한번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전상태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군사적 비용이 필요하다. 통일시대의 한반도를 경영하기 위해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경제안보가 무너지고 연이어 국가안보도 무너지게 된다.

군사적 의미의 국가안보에서 최첨단의 무기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군인들의 사기와 단결력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강의 경쟁력 못지않게 국민들의 통합과 화합이 중요하다. 국민통합은 서로를 위한다는 구호를 우렁차게 외치거나 한두 가지의 정부정책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발전하는 경우 너와 내가 모두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흘러넘치는 경제에서 국민통합은 가능하다. 대기업이 발전하는 경우 거래 중소기업도 같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경제여야 한다.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일하면 다시 성공의 사다리를 탈 수 있는 경제에서 국민통합의 희망이 생긴다.

실행 측면에서 볼 때 경제안보를 위해서는 위기대응 매뉴얼의 확립이 중요하다. 이번 천안함 침몰에서 보듯이 철저하게 준비된 위기대응 매뉴얼이 없는 경우 위기 발생 시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된다. 국내적 관점에서 그리고 국제적 관점에서 위기 징조를 미리 감지할 수 있고,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위기대응 매뉴얼을 깐깐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넋을 놓고 살 수는 없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천안함 침몰이 주는 교훈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천안함과 운명을 함께했던 우리 장병들의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는 길일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