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불려가는 골드먼삭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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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제소당한 골드먼삭스 경영진이 의회에서 공개 해명에 나선다. AP통신·월스트리트 저널(WSJ) 등 미국 언론은 21일(현지시간) 골드먼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와 파브리스 투르(31) 부사장이 27일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청문회는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산하 상설 조사 소위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여는 것이다. 일정은 SEC 제소 전에 이미 잡혀 있었다. 골드먼삭스에선 애초 블랭크페인 CEO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SEC 제소 후 계획을 바꿔 투르 부사장까지 나가기로 했다.

투르는 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피소된 유일한 골드먼삭스 임원이다. 그는 2007년 골드먼삭스가 두 곳의 독일 투자회사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이 포함된 복잡한 파생상품을 팔 때 실무 책임자였다.

SEC는 당시 투르가 독일 회사에 파생상품을 팔면서 헤지펀드 전문가 존 폴슨이 상품을 설계했고, 폴슨은 이 상품의 가격이 떨어진다는데 베팅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독일 회사는 가격이 오를 것으로 믿고 샀다가 수억 달러를 손해 봤다. 월가에선 투르가 골드먼삭스 경영진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 ‘희생양’으로 보고 있다. 거액의 파생상품 거래를 부사장 전결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투르는 당시 친구에게 보낸 e-메일에서 자신이 관여한 거래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EC가 투르를 제소하자 골드먼삭스가 이례적으로 그에게 무기한 유급 휴가를 준 것도 희생양 설에 무게를 더한다.

그는 1분기 깜짝 실적에 따른 보너스도 두둑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투르가 청문회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이번 청문회는 뜨거운 논쟁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원인보다는 SEC 제소 건에 의원들의 질문이 집중될 공산이 크다.

특히 금융개혁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골드먼삭스의 비도덕성을 집중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투르를 내보내기로 한 것은 골드먼삭스도 더 이상 수세적 방어에 머물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의회에서 SEC 제소의 부당성을 적극 해명하겠다는 것이다.

골드먼삭스가 공세로 나선 건 벌써 영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씨티은행 지분 매각 주간사로 골드먼삭스 대신 모건스탠리를 선정했다. 영국과 독일 정치권에서도 자국 정부가 골드먼삭스와 맺은 거래관계를 조사가 끝날 때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세적으로만 나가면 신뢰의 위기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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