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 학교가 우수고교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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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빠져나가던 학교에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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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광주종합고등학교에 올 들어 생긴 변화다. 신입생 모집 때마다 인문계열은 늘 미달이었고 어렵게 뽑아놓은 학생들도 30~40명씩 중간에 그만뒀던 학교. 그러나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우수 신입생이 몰렸고, 교육 여건이 더 좋은 성남.용인에서 일부러 전학 오는 학생들까지 생겨났다. 이 학교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학교에는 올해부터 1학년 1반이 없다. 대신 1학년 '유비무환'반이 있다. 올해 초 수준별 이동수업을 도입하면서 학생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반이름을 새로 붙였기 때문이다. 다른 반 이름도 '초지일관''사필귀정''일취월장''고진감래''대기만성' 등이다.

이 학교 1학년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세 시간 동안 성적에 따라 정해진 반에서 국어.영어.수학 수업을 듣는다. 학생이 원하면 정해진 것보다 한 단계 높거나 낮은 반으로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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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1학년 영어수업 시간. 일취월장반에선 분사 구문에 대한 다소 수준높은 수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 대기만성반 칠판에는 'symbol:상징, industry:산업' 등 기본적인 영어단어와 그 뜻이 빼곡히 적혀 있고, 학생들은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는다. 김진규 1학년 부장교사는 "이 반 학생들은 수준이 낮기 때문에 문장보다는 단어 위주로 영어수업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영어.일어.중국어 회화와 과학.한문 등 다양한 학습 동아리도 운영 중이다. 학생들은 학원에 갈 필요 없이 원하는 과목을 매주 금요일 저녁 두 시간씩 무료로 배울 수 있다.

1학년 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 70명은 무료로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그 중 6명은 학교 지원으로 여름방학 때 4주간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학교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라는 평판을 들었다. 지난해 입학생 중 성적 우수자(내신 180점 이상)는 단 4명에 불과했다. 이 지역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개 분당의 고등학교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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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9월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 대상학교로 선정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학교의 질을 높여 우수 학생의 대도시로의 이탈을 막음으로써 농어촌.중소도시 학교의 활로를 찾으려는 이 사업을 통해 2006년까지 경기도와 도교육청으로부터 모두 35억원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교사들부터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전국의 명문 고교를 찾아다니며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수준별 이동수업과 학습 동아리 프로그램 등을 직접 개발했다. 그 결과 올해 입시에서 성적 우수자가 72명으로 크게 늘었다. 또 일요일에도 희망자에게 보충수업을 해주는 등 "성심껏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용인.성남에서 12명이 전학왔다.

1학년 전욱(대기만성반)군은 "수준별 이동 수업 때문에 이 학교를 선택했다"며 "공부 못하는 학생도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1학년 김원진(고진감래반)양은 "선생님들이 수준에 맞게 잘 가르쳐 주셔서 훨씬 이해가 잘 되고 공부에 자신감도 생겼다"며 만족스러워했다. 1학년에 다니는 딸을 둔 조철제(46.자영업)씨는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학교에서 아이 수준에 맞춰 지도해주는 걸 보고 이제 학교를 믿게 됐다"고 말했다.

최병설 광주종고 교장은 "학교가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한애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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