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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용사는 늙지 않는다,‘60 청춘’들의 신나는 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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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0일 울산시 울주군 고려제강 언양공장에서 강길훈 공장장(앞줄 왼쪽)과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 공장 생산직 근로자는 정년퇴직한 뒤 재입사한 ‘신입사원들’로 평균 나이가 만 59.7세다. [송봉근 기자]

20일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고려제강 언양공장. 특수 선재인 ‘컨트롤 와이어’를 주로 생산하는 곳이다. 컨트롤 와이어는 지름 0.2㎜가량 되는 가느다란 철선을 꼬아 ‘쇠밧줄’로 만든 것으로 주로 자동차 문을 여닫는 데 쓰인다.

겉으로 봐선 여느 공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곳에선 아주 색다른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 공장 생산직 근로자 30명의 평균 연령은 만 59.7세. 이들을 지휘하는 ‘최연소’ 현장 근무자 강길훈(54) 공장장은 “2008년 10월 언양공장을 컨트롤 와이어 생산라인으로 정비하면서 정년퇴직자들이 새로 입사했다”고 설명했다. 오전 근무반 김병섭(63) 반장은 “그래서 여기는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모인 곳”이라고 자랑했다.

이 회사 생산직 근로자의 정년은 만 55세이고, 촉탁직으로 최장 58세까지 일할 수 있다. 고려제강은 2008년 10월 중국 이전으로 18개월간 비어 있던 언양공장을 ‘퇴직자 전용 라인’으로 정비하면서 재입사 희망자 30명을 전원 고용했다. 입사 자격은 단 두 가지, 이 회사 정년퇴직자로 신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시 수영동에 이웃해 살고 있는 곽덕원(64)·덕삼(61)씨 형제도 이곳에서 일한다. 동생 덕삼씨는 “2008년 퇴직자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응모했다”고 말했다. 최고령자인 곽덕원씨는 “동생과 합치면 60년 넘게 일한 회사”라며 “그런데 (회사에서) 다시 불러줬다. 환갑이 넘어서도 출근할 일터가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며 웃었다.

곽덕원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자리를 떠나고 나서 아쉬움이 컸지요. 기력도 떨어지고. 다시 일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래봬도 내가 반장 출신이거든. 옛날 실력 발휘하지, 며느리 용돈 줄 수 있지, 거기다… 저축도 해요. 우리가 만든 제품이 현대·기아차부터 벤츠·GM·포드에 팔린다고 하니 자부심도 크고….”

공장 가동 550여 일째지만 안전사고는 전혀 없다. 지금까지 퇴사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자랑거리. 강 공장장은 “지난해 사소한 고객 불만이 하나 접수됐는데 이게 작은 흠결”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한 직장에서 최소 25년을 근무한 자존심이 강한 분들이 근무한다. 납기나 품질, 안전의식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귀띔했다.

회사는 고령자가 편안하게 일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수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15~30㎏짜리 소형 제품을 자동으로 운반할 수 있는 크레인을 설치했다. 조명도 밝게 했다. 월 1회 인근 병원과 연계해 건강검진도 받도록 했다. 잔업·특근은 절대 금물이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160만~180만원가량. 지난해 이 공장은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익은 2억원 남짓. 강 공장장은 “올해는 90억원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퇴직자 재고용은 “퇴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 아니겠느냐”며 고려제강 홍영철(62) 회장이 제안한 것이다. 홍 회장은 “염려했던 사고도 없고 생산성도 예상보다 높다”며 “언양공장은 현재까지는 보람 있는 실험”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회사는 ‘역전의 용사들’에게 따로 정년을 정해 두지 않았다. 홍 회장은 “정년은 ‘체력 닿는 데까지’”라고 말했다.

◆“회사서 칠순 잔치 열어줄 것”=중견·중소 제조업체 가운데는 이 회사 말고도 ‘정년 없는 회사’를 선언한 곳이 꽤 된다. 충남 천안에서 연 15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삼신종합식품도 그런 회사다. 돈가스를 주로 만드는 이 회사 70여 명의 임직원 중에는 환갑이 넘은 직원이 두 명이다. 이 회사 최선근(47) 사장은 “가족 같은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일 잘하고 건강에 문제가 없는데 나이가 문제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이들에게 칠순 잔치를 열어줄 준비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울주=이상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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