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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업자가 검사에게 술사고 돈줘야 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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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날그날 만나는 검사들에게 술을 사고, 숙박을 책임지고, 성(性) 접대하는 것이 내 임무였죠.” 경남 지역의 건설사 전(前) 대표 정모씨의 증언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그제 밤 방영된 MBC PD수첩에 나온 정씨는 “지난해까지 25년간 현재 검사장으로 재직 중인 2명을 비롯해 부산·경남 지역의 검찰청을 거쳐간 검사 100여 명에게 돈 봉투와 향응 제공, 성(性) 접대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는 룸살롱 여종업원의 증언,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들의 해명, 동행했던 건설사 간부의 발언이 생생히 소개됐다. 한마디로 온갖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경연장을 보는 듯했다.

어제 우리는 정씨가 부산지검에 낸 진정서 일부를 토대로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검사의 처신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하지만 방송에 등장한 정씨의 육성(肉聲), 구체적인 정황과 증빙자료를 보면 단순히 꾸며낸 소설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씨가 제시한 문건에는 당시 접대 대상자뿐 아니라 사용한 수표의 일련 번호, 식사·룸살롱 장소와 가격, 팁, 떡값 등 낯뜨거운 기록이 생생히 적혀 있었다. “보복성 음해”라는 검찰 당사자들의 변명이 궁색하게 들린다.

돈과 향응에 길들여진 검사들이 ‘스폰서’ 정씨의 각종 청탁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검찰에 보험을 들었던 것”이라며 “사건 부탁도 하고 (쉽지 않은 청탁도) 다 들어줬다”는 정씨의 말은 부정(不正)의 공생 구조를 능히 짐작하게 한다. 빈번한 접대 대상으로 거론된 한 지검장은 정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동지적 관계”라고 할 정도였다. 도덕성도 자존심도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검찰 주변에선 ‘스폰서 문화’가 있다는 소문이 종종 돌아다녔다. 그래도 이 정도로 타락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지금 검찰은 정씨의 폭로 의도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대검찰청은 향응에 대한 반대급부가 뭐였는지, 떡값은 얼마였는지, 성 접대가 실제로 있었는지 등을 규명해 엄중히 조치해야 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어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중 조치를 약속했다. 뼈를 깎는 반성과 자정만이 검찰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