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IMF 빚' 3년 앞당겨 오늘 청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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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3일 오전 10시30분 한국은행 총재실.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 총재는 국제국에서 올라온 국제통화기금(IMF)차관 1억1천1백80만 SDR(IMF 특별인출권 : 1억4천만달러 상당)를 갚는다는 서류에 사인을 한다. 곧바로 미국 뉴욕 연준(FRB)과 시티뱅크 등의 한국은행 계좌에서 프랑스.독일.아일랜드.그리스.쿠웨이트 등 5개국 중앙은행으로 송금된다. IMF가 송금할 곳으로 지정한 계좌들이다. 유럽 4개국 중앙은행에는 유로화로, 쿠웨이트에는 디나르화로 입금된다.

송금이 끝나면 국제국 국제협력팀에선 "귀측(IMF)이 지시한 은행의 계좌에 다음과 같이 총 1억1천1백80만SDR를 보냈으며 이번 상환으로 인해 IMF의 대기성 차관을 모두 갚았음을 통보합니다" 라는 내용의 텔렉스를 보낸다.

23일 오전에 벌어질 상황이다.

이를 끝으로 외환위기 이후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게 된다. 당초 계획했던 2004년 5월보다 3년 가까이 앞당겨 빚을 정리한 셈이다.

정부는 'IMF를 졸업했다' 고 큰 소리치며 기념식이라도 하고 싶지만 최근 경제가 죽을 쑤는 바람에 내놓고 자랑할 염치가 없는 모습이다.

◇ 고통스러웠던 상환과정=정부가 IMF에서 1백95억달러,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각각 70억달러와 37억달러를 지원받아 국가부도 위기를 넘긴 후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IMF측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

외환위기 초기에는 외환시장과 물가안정을 위해 고금리 정책을 썼고 재정도 긴축적으로 운용했다. 조금이라도 덜쓰게 만들어(수요를 줄여) 경상수지를 흑자로 돌리기 위한 정책으로 정부와 IMF가 총 11차례에 걸친 정책협의에 의해 마련한 위기극복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정책협의에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IMF 프로그램은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개방, 기업투명성 제고를 위한 것으로 대체로 우리 경제가 가야할 방향과 맞는 것이었다" 며 "그러나 콜금리 수준을 높게 정하고 미국식 감사위원회 도입을 요구하는 등 너무 세세하거나 국내 상황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고 회상했다. 이같은 정책협의 때문에 'IMF 식민지 체제' 라는 말도 나왔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변화를 겪었다. 개발연대의 신화였던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됐고 현대그룹도 쪼개지고 정리돼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던 신화도 깨졌다.

◇ 남아 있는 숙제=앞으로 IMF의 정책간섭은 없다. IMF는 회원국에 대해 매년 한 차례씩 하는 연례협의를 통해 자문 역할만 하게 된다. 이같은 상황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았던 것이 외환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췄다가는 또 다른 위기가 엄습해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병주 서강대교수는 "외환보유액이 늘기는 했지만 금융.실물.노동시장.관료사회 경직성 등의 위기요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며 "IMF라는 외부의 힘을 빌려 그동안 못했던 구조조정을 해왔는데 앞으로 구조조정 속도가 떨어질까 걱정" 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빚을 완전히 갚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IMF 등에서 빌린 돈으로 만기가 돌아온 금융기관 단기부채를 갚아주면서, 한편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아주기 위해 공적자금을 잔뜩 쏟아부었다. 현재까지 투입된 공적자금만 1백37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대신 금융기관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완전히 팔아넘겨야 빚에서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대우자동차.서울은행.대한생명 등의 해외 매각과 공적자금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진정한 IMF 졸업' 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송상훈.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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