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탁상 기획' 쓴맛 보는 FOF 영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주최측의 준비 부족인가, 아니면 관계 법령의 미비인가.

최근 1~2년간 세계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을 따로 모아 소개한다는 기획력이 돋보였던 '페스티벌 오브 페스티벌스'가 휘청거리고 있다. 27일부터 3주 동안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서른다섯 편을 동시 상영한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FOF가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제를 개최하는 주체가 상업 영화사라는 점이다. 유럽의 예술영화 전문배급사인 셀룰로이드 드림스가 국내 영화사인 퍼시픽 엔터테인먼트(대표 전영택)에게 상영작 전체를 미니멈 개런티(영화 수입사가 외국 배급사에 지급하는 최소 금액)없이 공급키로 하고 영화제를 추진했으나, '공익성.공공성이 있어야 한다' 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 관련 규정에 묶여 행사 자체가 주춤하고 있다.

부산.전주.부천 등 지자체가 개최하는 영화제와 달리 민간 영화사가 주도하는 행사여서 자칫 상업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이에 영진위는 공익적인 성격을 보강하기 위해 주최측에 조직위 구성, 정관 작성 등을 요구했다.

주최측은 이를 수용해 부랴부랴 조직위를 구성하고 출품작들의 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영화제용으로 영화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해주는 것)을 신청했으나 현재 추세라면 다음달에나 영화제의 구색이 갖춰질 것으로 보인다.

전영택 대표는 "국내 처음으로 민간 영화사에서 여는 영화제라 혼선이 생긴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는 "영진위 관계자도 처음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막상 영화 서른다섯 편이 들어오니 마땅한 규정이 없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영진위 법규에 민간 영화사가 영화제를 주최할 수 있다, 혹은 없다 등의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엔 여유를 갖고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주최측의 책임이 크다. 할리우드 편식증이 극심한 국내 극장가에 각양각색의 영화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에만 안주했던 것은 아닌지…. 이유가 어떻든 관객과의 약속은 일단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