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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지는 남남 갈등] 1. 대북관 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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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 은 분단 후 처음 열린 행사인 데다 남북관계 진전에 어느 정도 기여하리라고 기대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간은 물론 남한 내부에서도 갈등을 점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대북정책을 놓고 논란을 빚었던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기본 인식 및 통일방안 등을 놓고 더욱 깊은 갈등에 빠져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혼란에 빠진 남북관계의 배경과 대안을 모색해 본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놓은 것 같다. "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평양에서 벌어졌던 남남(南南)갈등과 혼란이 21일 서울에서도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주부 金모(38)씨는 "남북 문제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고 말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비현실적인 냉전적 사고방식과 조급한 통일 지상주의를 버려야 한다" 고 강조한 몇시간 뒤 평양에선 일부 인사들의 돌출행동이 잇따랐다.

같은 시각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서도 북한의 통일방안과 관련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모형이 설치됐다가 슬그머니 철거됐는가 하면, '주한미군 철수' 주장도 나왔다.

통일부.행정자치부 등이 후원한 행사였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남측 시민은 거의 없었다. 2001년 여름 대북 문제를 놓고 '이상한 현상' 이 속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념적 색깔이 다른 2백여 단체로 구성된 남측 대표단의 혼란상은 우리 사회 전체의 축소판에 가깝다. 물의를 빚은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놓고 다시 사회가 양분될 조짐도 보인다. 21일 김포공항에서의 전국연합.한총련과 재향군인회 등의 대립은 그 한 단면일 뿐이다.

관료와 지식인 사회에서도 대북관 차이의 골은 깊다. 특히 이번 갈등은 단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게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우려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에서 두 가지를주목하고 있다. 우선 6.15 남북 공동선언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 고 한 대목이다.

동국대 고유환(高有煥)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실정법을 초월해 통일방안 등에 합의했다" 며 "그러나 이런 합의사항들이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공론화나 제도화가 되지 않아 평양 행사와 같은 혼란이 일어났다" 고 분석했다.

실제 한총련 등으로 구성된 통일연대는 6.15 공동선언이 남북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만큼 연방제 통일방안이 과거처럼 불온시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실정법 위반은 차치하더라도 국민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측이 6.15 공동선언을 연방제로 몰고가는 점도 우리 내부의 혼란을 부추긴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북 대표들이 평양에서 연방제 통일강령을 6.15 공동선언으로 바꾸기로 합의한 것은 언뜻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이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선언=연방제' 로 하려는 북측 의도와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高교수는 "개정 논의가 나온 국가보안법이 고쳐지지 않은 것도 이번 평양행사를 둘러싼 파문을 증폭시키게 될 것" 이라고 분석한다.

둘째는 국회 등을 포함한 국민적 논의의 장(場)을 마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해온 정부의 독단성이 지적된다.

연세대 이정민(李正民)교수는 "정부가 남북 교류를 추진하면서 실정법 적용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저울질을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경계선이 무너졌다" 며 "이런 것들도 우리 내부의 혼란을 부채질한다" 고 말한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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