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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문제 많은 방학숙제용 음악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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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해마다 이맘때면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등 공연장들은 청소년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음악회 티켓.팜플렛 3개 이상 모아 오기' '감상문 제출하기' 등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여름방학 과제로 음악회 감상문 제출이 채택된 것은 1995년부터.

개학 직전까지 열리는 음악회의 대부분이 방학숙제용 음악회로 변질된 '청소년음악회' 다. 전석 매진되는 공연도 허다하고 늦게 가면 음악감상를 위한(아니 감상문을 작성하기 위한!)팜플렛도 미처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태가 속출한다.

매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몇몇 연주자들은 '귀국 독주회' 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에다 '청소년을 위한 여름방학 음악회' 라는 타이틀을 내건다.

일부 단체들은 문화관광부.서울시 지원금도 타냈다. 공연장.공연단체.기획사들은 이른바 방학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

기획사.연주단체는 물론 공연장 주최의 청소년음악회라고 해서 모두 프로그램이 우수한 것은 아니다. 예술의전당의 '베스트 클래식' 은 컨셉트가 불분명한 타이틀에다 연주단체들이 평소 쉽게 연주하던 교향곡을 한 악장씩 엮어 놓은 '졸속기획' 이다.

작품을 불구로 만들 바에야 서곡만으로 꾸민 프로그램이 훨씬 낫지 않을까. 처음부터 해설을 동반하도록 작곡된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을 연주하는 공연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오케스트라의 악기' '음악과 미술' '음악과 문학' '무용음악의 세계' '타악기의 세계' '바다를 주제로 한 음악' 등 청소년들의 호감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쉽다.

공연개막 시간도 오후 7시30분이 대부분이어서 뒤늦은 귀가길 걱정 때문에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학생들도 많다. 청소년들을 위한 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수익과 관객동원에 혈안이 돼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국내 대표적인 공연장.교향악단이랄 수 있는 예술의전당과 KBS교향악단쯤 되면 청소년교육 부서를 신설하고 교육부.문화관광부와 연계해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라디오로 음악과 해설을 들어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미래의 청중' 을 영영 잃어버리는 과오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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