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좌절 겪는 중국동포 '코리안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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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한 종교단체가 5~10년 동안 자식을 만나지 못한 채 불법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위해 중국에 사는 이들의 자녀 1백여명을 초청해 마련한 행사의 마지막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버지.어머니, 열심히 공부할게요. "

"돈 벌어서 곧 가마. 조금만 더 기다려라. "

1994년 입국한 중국동포 김대곤(가명.42)씨 부부는 7년 만에 만나 두 주일을 함께 지낸 외아들(14)과의 이별이 안타까운 듯 공항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차창 밖으로 상체를 내민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국에 온 상당수 중국동포들은 金씨 부부처럼 자녀와의 생이별이라는 아픔을 안고 있다. 이들은 이런 고통 외에 몇년 고생하면 제법 많은 돈을 벌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국 과정에서 중국의 10년치 평균 임금인 5만~10만위안(약 6백만~1천1백만원)이라는 거액을 브로커에게 준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 은 그리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의 궂은 일을 해야 하고, 불법 체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임금이 밀려도 참아야 한다.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도 치료비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어 모아 놓은 돈을 탕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재팀이 서울 가리봉.가산.대림동 일대에 사는 중국동포 1백11명(평균 체류 기간 36개월)을 면접 조사한 결과 1천만원 이상의 돈을 모은 사람은 조사 대상의 18%에 불과했다. 20%는 '거의 한푼도 모으지 못했다' 고 답했다.

이들이 국내 생활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제외하고 모을 수 있는 돈은 한달에 30만~4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97, 99년 두차례 사채를 얻어 마련한 8백만원을 브로커에게 주고 입국했지만 생각보다 임금이 적고, 몸도 다쳐 아직 본전도 못찾았습니다. "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유현(가명.53)씨는 "중국에서는 사채업자에게, 한국에서는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 라고 한숨을 쉬었다.

면접 조사 결과 33%가 산업재해를 당했다고 답했으며, 이중 무려 68%가 치료비를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금이 체불되거나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한 경우도 35%와 11%나 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의 출입국관리소에서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문제 등으로 상담한 외국인 근로자는 2천5백여명. 이중 절반이 중국동포로 추정된다.

불법 체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대부분이 정부 기관에 신고하기를 꺼리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훨씬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서경석 목사는 "중국동포들의 이런 고충을 외면하면 설사 이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더라도 반한(反韓)감정을 갖게 될 것" 이라며 "최소한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문제 등은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규연.김기찬.조강수.강병철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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