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소록도는 사람·음악 어울리는 사랑의 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박지은 팀장은 “주민과 자원봉사자·후원자가 함께 어울리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안녕하세요’ 대신 ‘감사합니다’로 인사를 하는 섬. 영국 레이디 R 재단의 박지은(29) 팀장이 본 소록도(한센병 환자들의 모여 사는 곳)다. “섬 주민의 평균 나이가 75세입니다. 누구라도 찾아와준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뜻이죠.”

레이디 R 재단은 다음달 5일(어린이날)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주최한다. 세계적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지휘하고, 조용필씨도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한다.

박 팀장은 애초 좀더 전문적이고 화려한 행사를 계획했다. “예를 들어 불꽃놀이를 할 수 있었어요. 서곡·협주곡·교향곡으로 이어지는 클래식의 ‘정식 코스’도 보여줄 수도 있었죠. 하지만 외지인이 온 것 자체에 감사해 하는 주민들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재단 측은 ‘음악’과 ‘사람’이 어울리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회 진행은 물론 의료·음식 등 여러 분야의 자원봉사자 70여 명이 이날 소록도에 모인다. ‘이노엠모델’의 패션모델들이 공연장 세팅과 안내를 맡는다. 소록도병원 직원들도 일손을 돕는다. 서울시 보라매병원에서는 의료기기를 제공하고, 서울의 레스토랑 빌라에트바스는 한센인을 위한 도시락을 제공한다. 남도음식문화연구회·아시아차문화연구회 등도 함께 소록도를 찾는다.

“이날 소록도는 ‘사랑의 섬’이 될 거에요. 단순히 음악회를 한 번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죠. 많은 사람이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생각입니다.”

음악회 시간도 조정했다. 오후 5시면 잠자리에 드는 소록도 주민의 일과표에 맞춰 오후 2시에 열린다. 프로그램도 30분 정도의 베토벤 ‘운명’ 교향곡 한 곡으로 최소화했다.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씨가 공연을 결심한 것도 행운이었죠. 철저히 주민들의 입장에서 공연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공연 제작비는 3억여원. 좀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10여 개 기업과 개인이 도와주셨어요. 조용필씨와 아슈케나지는 출연료를 받지 않기로 했고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교황 방문 뒤 소록도 주민들이 외부인들과 같은 배를 타고 육지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 들었어요. 작지만 의미가 큰 변화였죠. 물론 이번 공연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설움이 단박에 풀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아주 작은 변화라도 생긴다면 좋겠습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레이디 R 재단(www.theladyrfoundation.org)= 지난해 7월 영국의 로더미어 자작부인(한국명 이정선·61)이 전 세계, 특히 한국의 소외된 계층을 돕기 위해 설립했다. 그 첫 프로젝트가 소록도 공연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