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참배보다 참회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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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주춤거리고 있다. 연립여당 일원인 공명당의 고위 인사는 11일 고이즈미가 오는 15일 '종전(終戰)의 날' 참배를 '피할 것' 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참배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말을 했으면 실천한다(有言實行)" 는 것이 고이즈미의 정치자세인 점으로 미뤄볼 때 다른 날을 골라 참배할 가능성이 크다.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전몰자(戰歿者)를 애도하고, 다시는 전쟁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다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뿐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의 위패도 보관하고 있다.

일본 총리가 전범(戰犯)들의 위패를 보관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전쟁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행동이다. 일본 헌법에 명기된 정교분리(政敎分離)에도 어긋난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을 제사 지낸다. 메이지(明治)유신에 목숨을 바친 3천6백명을 제사 지내기 위해 1869년 도쿄(東京)쇼콘샤(招魂社)로 출발해 10년 뒤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그 후 청일.러일.중일.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신(神)' 으로 모셨다. 육.해군이 직접 관리한 특수신사로 군국주의의 정신적 지주였다. 현재 2백47만명의 위패가 보관돼 있으며, 그 중엔 한국인 2만1천2백명도 들어 있다.

1959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들의 위패를 받아들이기 시작해 78년 14명의 합사(合祀)를 완료했다. 그 후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항상 핫 이슈였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는 85년 8월 15일 공식 참배를 감행했다가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 중단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도 96년 7월 자신의 생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갔다가 역시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로 단 한번으로 끝났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고이즈미의 집착은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태평양전쟁 말기 가미카제(神風)특공대를 흠모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전쟁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불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우익진영은 고이즈미의 이같은 태도를 좋아한다.

이들은 과거 군국주의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동전의 양면(兩面)이다.

중.일전쟁 이후 전쟁으로 죽은 일본인은 공식적으로 3백10만명이다. 한편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아시아인은 2천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엄청난 인재(人災)다.

일본인 전몰자들은 애도하면서 왜 이웃나라의 원혼(寃魂)들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는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보다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고 평화를 다짐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행동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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