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먼훙차엔 사과,난초향 … 영국 왕실 사로잡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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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22면

"용정인가. 오늘 늙은 땡초가 호강을 하는군."
"철관음을 즐기신다 들었습니다만 마침 가진 게 이것밖에 없군요."
무협지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소림사 방장 스님과 마주앉은 장면은 대략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차를 빼놓고는 중국인의 삶을 얘기할 수 없다. 차 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답게 중국에는 다양한 차가 생산된다. 차의 서열을 매긴 품차도감(品茶圖鑑)이나 중국명차지(中國名茶志)는 중국차 중 독특한 맛을 갖췄으면서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것을 10대 명차로 선정했다. 녹차류 4종류와 우롱차 2종류, 황차·백차·홍차·흑차가 각각 한 종류씩이다.

세계의 입맛 사로잡은 명품 차

녹차류는 서호의 용정(西湖龍井·룽징)과 동정의 벽라춘(洞庭碧螺春·비뤄춘), 황산의 모봉(黃山毛峰·마오펑)과 노산의 운무(盧山雲霧·윈우)가 4대 명품으로 꼽힌다. 룽징은 항저우(杭州) 부근 서호에서 나는 것을 최상으로 치며 1㎏의 최상급 차를 얻기 위해 7만∼8만 장의 찻잎을 덖어서 만든다고 한다. 비뤄춘은 태호 근처에서 나는데 청나라 강희제가 직접 이름을 내렸다는 설이 있다. 마오펑은 치먼홍차와 더불어 안후이 지방의 대표적인 명차다. 황차로는 군산은침(君山銀針·쥔산인전)이, 백차는 정화백호은침(政和白毫銀針·바이하오인전)이 10위 안에 올랐다. 쥔산인전은 마오쩌둥이 가장 즐긴 차로 명성을 떨쳤고, 바이하오인전은 톄관인과 함께 푸젠성을 대표하는 차다.

우롱차 가운데서는 무이암차(武夷岩茶·우이옌차)와 안계철관음(安溪鐵觀音·톄관인)이 명차 반열에 올랐다. 우롱차는 찻잎을 50% 정도 발효시킨 것이다. 완전히 발효시키면 홍차가 된다. 홍차로는 기문홍차(祁門紅茶·치먼훙차)가 첫손에 꼽힌다. 흑차류로는 윈난성에서 만들어져 차마고도를 넘어 운반하는 동안 발효가 이뤄진다는 운남보이(雲南普·푸얼)가 이름을 올렸다. 2007년에는 푸얼차 투기바람이 중국을 강타해 1㎏에 250위안이던 게 한때 800위안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 푸얼차 산업은 거품 붕괴를 넘어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노산운무 대신 대만의 대표적인 차인 동정오룡(凍頂烏龍·둥딩우룽)을 넣는 경우도 있다.

서구에서는 녹차보다 홍차를 많이 마신다. 특히 차를 좋아하는 영국에서는 중국의 치먼훙차와 함께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를 3대 홍차로 친다.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리는 다즐링은 인도 동부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난다. 가볍고 섬세한 맛과 머스캣 포도향이 특징이며, 밝고 옅은 오렌지색으로 우러나온다. 스리랑카 남동부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우바는 일반적으로 '홍차' 하면 떠오르는 진한 맛이 일품으로 달콤한 장미향이 난다. 투명하고 밝은 홍색을 띤다. 1915년 파나마 국제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세계 시장에 선보인 치먼훙차는 맛이 부드러우며 사과와 난초 향이 난다는 평을 듣는다. 설탕이나 우유를 첨가해도 향이 죽지 않아 밀크 티를 즐기는 영국 왕실에서 특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은 일반적인 잎차와 달리 덮개를 씌운 차나무에서 새싹만 모아 만드는 교쿠로(玉露)와 이를 삶은 후 건조 분쇄한 맛차(抹茶)가 인기다. 지역별로는 차 생산이 가장 활발한 시즈오카의 녹차와 함께 교토의 우지(宇治)녹차, 사이타마의 사야마차(狹山茶)가 명차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2008년 시즈오카에서 열린 세계 녹차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은 전남 보성녹차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차 박람회에서 덖음차 부문 1위를 차지한 제주 설록다원의 일로향(一爐香)이 명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녹차는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과 잘 어울린다. 카테킨 성분이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우려내 마시고 난 찻잎은 살림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냉장고 안이나 신발장을 찻물로 닦으면 냄새를 없앨 수 있다. 더불어 우려 마신 티백을 잘 말려 신발 안에 넣어두면 축축히 젖은 습기까지 싹 사라진다. 말린 찻잎을 베개 속에 넣어두면 향이 좋을 뿐 아니라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다. 녹차 물로 세수를 하거나 마시고 난 티백을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든 뒤 5분 정도 눈에 올려놓으면 부기가 빠지는 효과가 있다. 차 찌꺼기에는 단백질과 아미노산·무기질 등이 풍부해 실내에서 키우는 화초나 나무의 좋은 비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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