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금강산관광' 미 방해론 제기로 정부 곤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현대와 북한의 육로관광.관광 특구지정 합의와 한국관광공사의 사업 참여로 회생 조짐을 보이던 금강산관광 사업이 북측의 '미국 방해 주장' 으로 다시 뒤뚱거릴 위기에 처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현대측 파트너인 아태평화위원회가 지난 8일 성명에서 관광사업의 위기가 미국 때문이라며 "미국측이 모든 후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 이라고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이런 비난 공세는 지난 6월 8일 2개월 내에 공표키로 합의한 금강산 관광특구 관련 법안의 약속 시한에 맞춰 나왔다는 점에서 합의 이행은 물론 향후 금강산 관광사업 자체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고 있다.

북측은 '6.8합의서' 에서 6월 또는 늦어도 7월 중에는 당국간 대화를 통해 육로개설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에 반해 현대측은 북측과 합의한 대로 밀려 있던 금강산 관광대가 2천2백만달러(약 2백90억원)를 지난달 초 북측에 송금했다.

현대와 관광공사측은 현재 쾌속선인 설봉호만 사흘에 한차례 운항하는 등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나온 북측의 비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혹스런 입장에 처한 곳은 정부다.

금강산관광사업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당국간 대화 재개의 돌파구로 삼으려던 구상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협력기금 9백억원의 대출을 통해 관광 활성화를 지원했는데도 이처럼 북한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게 되면 "국민의 세금을 민간 대북사업에 쏟아붓고도 얻은 게 뭐냐" 는 야당과 보수 세력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남북 사이에 진행되는 금강산관광사업을 미국이 가로막아 나서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불만을 거듭 표출하고 현재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책임을 미국에 돌리려는 속셈" 이라고 분석했다.

북.미 관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한 남북관계가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측이 관광사업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으리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관광사업에 대한 방해 세력을 미국 정부와 '남조선 일부 우익 보수세력' 으로 국한하고 있는데다, 금강산 관광을 '민족 사업' 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일 금강산을 방문하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통해 북측의 진의를 파악한 뒤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