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 포럼] 1년6개월의 통치심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5년 대통령 단임제에서 임기 1년6개월을 남긴 통치자의 심리는 어떤가. 고려대 서진영(徐鎭英)교수는 "남은 임기 동안 국민들의 관심을 자기쪽으로 묶어둔 채 통치의 영(令)을 어떻게 세우고, 국정 장악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우선 순위를 두는 심리구조" 라고 설명한다.

이맘 때쯤 찾아오는 레임덕(집권말 권력누수)의 그림자를 느낄 것이라는 외부의 전망과 달리 의욕을 가다듬는다.

***국정 장악력 높이기 시동

과거 정권 그 시점 때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은 총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그해 말 북한으로부터 잠수함 침투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아냄으로써 "레임덕은 있을 수 없고 계속 힘을 가질 것" (당시 李源宗정무수석 회고)이라고 자신했다. YS는 국정 개혁의 노선을 도덕주의에서 실용주의쪽으로 바꾼다.

6공 시절 1991년 여름, YS의 집요한 권력의지 탓에 골치를 썩였던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지만 "임기출범부터 권력 행사를 자제했던 스타일 때문인지 레임덕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고 손주환(孫柱煥)당시 정무수석은 기억한다.

요즘 국정 전반을 새롭게 가다듬고 있는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심리는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정상황은 다르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가열된 우리 사회의 대립과 이념 갈등, 지식인의 편가르기는 해방 공간 때 못지 않은 소용돌이 양상이다. 여야의 대치는 벼랑 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력과 신문 사이의 긴장은 전례가 드물다.

대미.대일관계도 거칠어지고 있다. 박정희(朴正熙).이승만(李承晩)정권 모두 대미관계가 극도로 냉각되면서 내치(內治)까지 흔들렸고, 그런 국정 경험은 YS정권 때도 유효했다.

북한문제로 미국과 틀어지고, 과거사 논쟁으로 일본과 자존심싸움을 벌인 YS지만 IMF사태 때 도와달라고 두 나라에 손을 벌렸으나 외면당했다. 지금 한.미.일의 남방 3각관계는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3각관계에 비해 긴밀도가 떨어지고 있다.

내치쪽에서 그 반대의 측면을 집권세력은 염두에 두고 있다. 강한 정부론을 내세운 정책의 일관성 덕분에 DJ의 전통적인 지지세력이 다시 뭉치고 있다는 게 민주당 이협(李協)총재비서실장의 평가다.

정권의 인기가 바닥인데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 민심흐름은 민주당의 위안거리다. 여론조사 속의 李총재의 정체된 모습을 바탕으로 집권층은 정권 재창출과 정국주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DJ는 1년6개월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야당은 제왕(帝王)적 대통령이라고 비난하지만 통치쪽에서 보면 남이 안되게 할 수 있는 힘은 있으나 국가 경영의 효과적인 수단은 많지 않다. 사정(司正)이라는 전통적인 권력 관리 수단은 한계가 있다.

눈치빠른 고위 공무원들은 충성과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적당히 섞어 사정바람을 넘기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소수 정권의 국정 리더십을 보완하기 위해 현 정권이 일정수준 활용해 온 시민운동은 장애물에 부닥쳐 있다. 변협이 제기한 법치주의 틀에 벗어나있다는 논란과, 야당이 의심하는 정권의 홍위병(紅衛兵)시비에서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5년 단임제는 구조적으로 늘 새로운 통치 실험의 연속이다.

***5년 단임제의 실험 연속

국회의원(4년)과 엇박자로 임기가 진행되다보니 국가 경영, 권력 운영에서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 민주당 의원들의 다음 총선 공천권을 DJ는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DJ가 국정관리에 초점을 맞출 부분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헝클어진 국민 대통합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국론 분열에서 정책의 추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레임덕은 그런 틈새를 파고 든다. 국론결집의 바탕 없는 대북정책은 삐거덕거리게 마련이고, 개혁의 마무리는 쉽지 않다. DJ가 말하는 국정의 '선택과 집중' 은 국민통합의 면모를 새롭게 다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박보균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