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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김민기의 '못자리 문화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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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뮤지컬 '지하철1호선' 의 제작.연출.작곡가인 김민기(50)씨는 한때 시골에 틀어박혀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1980년대 초 이른바 '제5공화국' 시절이다.

'아침이슬' 등 그가 작곡.작사한 노래들이 '운동권 노래' 로 불린 것이 권력의 눈엣가시였다. 이런저런 압력을 피해 80년대초 김씨는 경기도 전곡 민통선 내의 오지에 들어가 세상과 절연(絶緣)한 채 농사를 지었다.

빈 집을 빌려 비 피할 곳을 마련하고, 소작을 부쳐 생활했다. 그러길 만 3년.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KS(경기고-서울대)맨' 에게 이런 농사일은 '사서 한 고생' 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때의 농사일을 통해, 이후 자신의 문화적 관점을 세우는 중요한 계기를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김씨는 소극장 학전(지금의 학전 블루)을 개관, 대학로에 터를 잡으며 80년대 농사에서 터득한 지혜를 담아 '김민기식 문화운동' 의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못자리 문화론' 의 실천이 시작된 것이다.

"대학로라는 못자리에서 잘 자란 모(문화)가 이곳저곳으로 이식돼 다양한 꽃을 피우게 하자는 것이지요. "

김씨의 풀이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 실천은 쉽지 않았다. 소위 '연극의 메카' 라는 대학로에서 자란 모가 지금껏 외지에 나가 착근(着根)한 예가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튼 김씨는 지난 10년을 대학로에서 못자리 돌보기에 매진했다. 그동안 '지하철1호선' 을 비롯해 '모스키토' '의형제' 등 그가 키운 모는 싱싱하게 자랐고, 이제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세파를 견디며 거뜬히 자랄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일차로 '지하철 1호선' 이 곧 모내기에 들어간다. 정든 대학로의 비좁은 소극장을 떠나, 세련되고 휘황찬란한 번화한 강남의 대극장 한복판(18일~9월 9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어 중국.일본에도 간다.

김씨는 지금 시집보낼 모를 다듬느라 새벽 3시까지 일하기는 보통이다. 입이 무거운 김씨도 "두렵다" 는 말로 그 떨림의 속내를 드러냈다. 이 시대 실천적 문화운동가의 소중한 이름인 그의 '못자리 문화론' 이 이번 공연을 통해, 너른 세상에서 만개하길 기원한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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