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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민당 당내 '선거혁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대만 국민당 전당대회에서 작지만 의미심장한 반란이 일어났다.

롄잔(連戰)당주석이 고시한 '당중앙위원 2백11명 명단' 중 서열 1위가 막판에 뒤집어진 사건이다.

야당이 된 뒤 처음 치르는 제16차 전당대회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3천여명의 대의원들은 당주석이 고시한 중앙위원 선거에 들어갔다.

국민당은 야당이지만 반세기 역사의 집권당답게 '권위주의' 체질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부주석도 주석이 지명하면 '박수 통과' 되고, 당실권을 장악하는 중앙위원도 주석이 지명하면 '자동 통과' 되는 식이었다.

연말 총선 승리를 위해 '제2의 창당' 을 선언했던 이번 전당대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예전처럼 주석이 '서열까지 지정해' 중앙위원 명단을 고시했다. 관례대로라면 이에 따른 중앙위원이 선출돼야 했다.

그런데 '반란' 이 일어났다.

連주석이 '서열 1위' 로 지명했던 측근 린펑정(林豊正)비서장이 3위로 밀리고, 서열 12위로 밀어놓은 마잉주(馬英九) 타이베이(臺北)시장이 1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나머지 주요 고위직 서열도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선거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결과가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젊은 대의원들이 사전각본에 의한 '투표공작' 을 무시하고 '소신투표' 를 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馬시장이 최다득표로 '중앙위원 서열 1위' 로 선출된 것이다.

連주석은 "(기분이)아주 좋다" 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지만 표정은 묘했다. '중앙위원 서열 1위' 인 馬시장과 악수할 때 지은 미소도 어색했다.

한 대의원은 "連주석이 세상이 변한 것을 모르고 자기 사람만 앞세우다 망신을 당했다" 고 비웃었다.

또 다른 젊은 대위원은 "당의 변신은 구호로 오는 게 아니다. 이게 바로 진짜 변신" 이라고 외쳤다.

대만 정치평론가들은 "선거패배 후 리덩후이(李登輝)의 사퇴를 요구한 성난 당원들 앞에 당당히 나서 이들을 설득하고 李주석에게 직언한 중앙위원은 馬시장밖에 없다. 젊은 당원들이 馬시장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 말했다.

"馬시장의 서열1위 부상은 차기 집권을 노리는 連주석에게 큰 부담이 될 것" 이라는 게 이들의 관측이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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