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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나라'와 '민족' 생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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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8월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나라' 와 '민족' 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나라잃음(국치일)' 과 '민족해방(8.15)' 의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특히 북한 정권의 '민족 우선적 전략기획' 과 그에 대한 우리 정부와 일부 사회단체의 대응 자세와 호응 행태로 인해 이념적, 그리고 정책노선 상의 남남분열이 위험수위로 향해 가고 있어 더욱 무거운 '나라와 민족 생각' 을 하게 된다.

***南南 이념분열 위험수위

우선 민족에 관한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이해와 접근 현실을 확인해 보자. 북한에 있어 '민족기획' 은 '체제 생존전략' 에 절대적 중요성을 차지한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 능력(생산.복지.인권)을 상실한 북한의 유일한 체제유지용 자산은 민족주의 정서와 군사주의뿐이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의 생존 위협은 외부 위협보다 내부 부실에서 기인한다.

북한이 6.15선언에 통일 관련 조항 삽입을 우선시한 것은 '민족기획' 을 통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으로부터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민족적' 으로 당연한 것처럼 논리화시켜 놓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애초 전쟁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소극적 평화)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북측과의 민족문제에 대한 일정한 합의와 공조 천명은 당장의 안보 목표 달성을 위한 협상과정에서의 타협의 산물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족이념에 내재한 엄청난 인화성이 계속해 민족과 국가(국민) 양 차원의 정책개념 사이의 엄격한 구분성을 흐트려 놓는다는 점이다. 사회 일각과 정부의 일부 정책은 북한 사회(민족) 돕기와 김정일 권력체제(정부) 돕기를 민족애라는 동일한 것으로 혼돈 혹은 착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편 최근 적지 않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남북간의 과도한 민족 우선주의적 정치타협까지를 희망하고 있음이 또한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형성을 목표로 했던 해방정국 상황조건과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피와 땀을 흘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향의 선진국가형을 향한 실험에 성공해 나가는 케이스다.

다만 현시점에서의 문제는 국가안보 위협에 관련된 현실인 것이지 남북협상(연방 혹은 연합제 등)의 문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영광과 발전은 지금 현실로는 우리(국가)의 발전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고, 현 북한의 정치권력은 이에 걸림돌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민족 중심적 이데올로기와 북한의 '민족기획' 에 의해 민족발전 저해의 책임이 마치 우리 남한 내부에 있는 것인양 오도되고 있음은 현시대의 아이러니다.

햇볕정책은 남북공존을 목표로 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공존지향 정책추진 구도 속에 북한의 '민족기획' 전략 효과를 배제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북측의 이념적 목표가 명백한데도 눈치를 보느라 우리의 국가정체성 문제에 소홀할 때, 이에 비례해 이념적 오해와 갈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북정책 비판 수용을

햇볕정책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공헌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일순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얻어내려는 강박감은 오히려 위험하다. 북한이 빨리 변하지 않는 이유가 진정 체제생존보장이 없어서인가, 김정일 정권의 취약성 때문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 실정이 북한 권력체제와 북한 사회의 생존을 동시에 떠맡을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단편적인 대북지원들은 북한 성격의 변화가 아닌 김정일 권력 체제의 내구성만 강화시키고, 오히려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 요인으로 자리잡아갈 것 같아 걱정이다.

민족문제에 관련된 인식논리가 바로설 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교정책 관련 현안 사무의 처리도 그만큼 수월해질 수 있다.

정부는 대북정책의 전략적 혼미와 아집에 대한 비판에 겸허해야 한다. 그래서 진정 올 8월은 향후 우리 민족과 국가 장래를 위한 사색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 우리 국가가 사회통합의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고히할 때 비로소 우리 민족의 위상과 미래의 영광을 기약할 수 있다.

金東成(중앙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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