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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전쟁 대비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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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상 산업부 기자

"일본 기업과 정부가 뭔가 작심을 하고 덤벼드는 것 같다. "

최근 일본 업체들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잇따라 특허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데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한.일 간의 특허 분쟁은 예전에도 간혹 있었지만, 최근처럼 잦았던 적은 없었다. 더구나 일본의 주요 기업이 한국의 대표적 업체를 번갈아 가며 걸고 넘어지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급성장하는 한국 전자업체들에 대한 초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특허 공세는 마치 기업과 정부가 짜고 치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일본 기업이 특허권 시비를 걸면, 세관은 '관세정률법'을 적용해 일단 한국 제품의 통관을 보류하는 식이다. 마침 일본특허청도 "휴면 특허라도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라"고 기업들에 훈수하고 나섰다.

한국 기업들이 특허 관련 소송을 당하면 쉬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도 종래와 달라진 모습이다. 비록 원천기술은 부족하지만 생산 및 응용기술에서는 우위에 있거나 대등하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가 분쟁 상대인 후지쓰에 팽팽히 맞선 끝에 상호 특허 사용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에도 바로 이런 기술력이 뒷받침됐다.

하지만 일본의 특허 공세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잃어버린 10년'의 잠에서 깨어난 일본 기업이 그동안 한국에 뺏긴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이 선정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10개와 일본이 밀고 있는 7대 신성장 산업이 대부분 겹치는 등 두 나라는 미래를 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특허 전쟁에 일본은 민.관이 똘똘 뭉쳐 나서고 있다. 총리 직속의 '지적재산전략본부'를 가동하면서 각 부처의 특허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가 하면 세계 각국에 전문가를 보내 일본상품의 도용 현황 등을 파악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특허 전쟁에서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이기기는 힘들다. 우리도 시급히 각종 관련 제도를 점검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대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현상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