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법·제도가 중소기업 성장 막아 맞춤형 지원으로 ‘허리 기업’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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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서울 성수동에 있는 여의시스템의 성명기 사장은 요즘 20억~30억원대 투자 프로젝트를 놓고 고민 중이다. 산업용 컴퓨터를 만들어 지난해 194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최근 한 농기계업체로부터 자동 발아장치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성 사장은 “아프리카·중동 등에 내놓을 수 있는 획기적인 상품이지만 연구개발 기간과 투자 자금이 문제”라고 말했다. 농작물의 발아부터 생장·수확까지 검증 기간이 1년 가까이 걸리는 데다 최대 2~3년의 테스트 기간이 필요해 이 회사로서는 20억원대 투자를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성 사장은 “이럴 때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 사업에 신청하고 싶지만, 마땅히 신청할 만한 항목이 없다”며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 20년째인데 최소한 갓 창업한 기업이나 벤처기업보다는 연구개발 지원이 더 많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런 정책으로는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을 중견기업으로 도약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경직된 법과 제도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코스닥 상장회사인 A사는 연 매출이 1000억원을 넘어서자 올 초 서비스 사업부를 떼어내 별개 회사로 분리시켰다. 이 회사 관계자는 “많게는 1300여 개에 이르는 세제·금융·인력 등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혜택이 사라질 수 있어서 회사를 쪼갰다”며 “우리 같은 곳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견기업으로 ‘점프’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맞춤형 지원 필요=이노비즈협회는 기업 규모나 성장 단계에 맞춰 지원 정책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규모나 업력, 특성에 따라 ‘맞춤형 지원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창업 단계에서는 초기 운영자금이나 판로 개척 지원, 성장 단계 때는 연구개발이나 시설자금·수출 지원 등에 대한 수요가 높다. 정부 지원도 여기에 맞춰 탄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성명기 사장은 “연구개발에서만큼은 지원 규모를 늘려 중소기업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공개 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15년째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 B씨는 “벤처기업 확인만 받으면 코스닥 상장 요건이 ▶자본금 15억원 이상 ▶당기순이익 10억원 이상 등으로 완화된다. 이는 일반 기업의 절반 수준”이라며 “오히려 10년 이상 한 우물을 판 우리 같은 곳을 더 인정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고용창출 많은 곳 지원 늘려야”=지난해 정부는 2조3700억원이라는 예산을 창업지원 사업에 쏟아부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일자리는 7만 개 이상 줄었다. 산업연구원 조영삼 연구위원은 “이는 일자리 창출이 미미한 자영업자, 창업초기 기업 등으로 예산이 집중됐기 때문”이라며 “이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검증된 기업을 지원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중소기업 지원 체계를 유망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쪽으로 정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청은 올해 안으로 중소기업기본법을 전면 개편하고 내년까지 관련 하위 법령과 지원 시책을 정비할 계획이다.

이상재 기자


맞춤형 중소기업 지원방안

기업 성장경로 실증 분석
-3만 개 중소기업 성장경로 분석
-400개 성공 기업 특성 분석

성장 단계별 정책 정비
-성장 정체구간 애로요인 해소
-혁신형 전문기업 육성
-낙후지역 중소기업 경영환경 개선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지원 확대

중소기업기본법 전면 개정
-환경 변화, 정책 수요 반영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에 초점

자료 : 중소기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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