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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입제도, 일단 믿고 협력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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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TV 사극을 볼 때 우리는 어떤 쟁점에 대해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결사적으로 투쟁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대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기는 하지만 사회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보다.

2008학년도 새 대입제도는 지난 8월 26일 개선시안이 발표된 이후 여러 논란을 거쳐 최종안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 개선안은 새로운 대입제도라기보다 공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맞춘 2002학년도 대입제도의 장점을 살리며 그동안 제기된 주요 문제들을 일관성 있게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겠다는 개선정책으로 이해된다.

새 대입제도 개선안은 전반적인 대입제도의 흐름과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 우리 교육 역사에서 점수만에 의한 학생 선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0년 전의 일이다. 1995학년도부터 우리 사회는 한해 한해를 넘기며 조심스럽게 특수교육대상자(장애인), 농어촌 학생, 특기자, 취업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등 특별전형을 하나씩 늘려나가고 논술, 면접, 학생부의 비교과 영역, 추천서, 자기소개서 등이 점수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단계를 거치게 됐다. 이후 2002학년도 제도에서 그 틀이 정비돼 우수 학생과 평가의 개념이 새롭게 정립됐고 특별전형은 더욱 확대됐다.

2002학년도 제도가 이제 세 번 시행됐는데, 여러 가지 장점과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신 부풀리기가 확대됨에 따라 수능 비중이 커지자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문제에 부닥쳐 2008학년도 개선안이 마련됐다. 이번 개선안은 사교육비 문제보다는 '모든 것을 교실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고교 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생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원점수+석차 9등급제를 도입했다. 또 수능 9등급제를 도입해 그 비중을 줄이고, 대입 전형의 특성화와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동안 일부 단체는 수능 폐지 또는 5등급제, 교사평가제, 3불 법제화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일부 다른 단체와 대학은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개선안에서는 사회 통합을 위한 전형 확대, 고교.대학.학부모 협의체 구성, 수능을 점수, 즉 9등급으로의 전환, 입학사정관제 도입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이 새로운 변화가 바로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과제를 잘 수용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입 정책이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일부 문제가 있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하고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일단 선택하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이 개선안이 성공적으로 발전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학생부의 신뢰도를 높이고 대입 전형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제도보다 운영이 더 큰 과제다. 우리 사회는 우리만의 상황 논리와 무관하게 치열한 경쟁 가운데 생존해 나가야 하는 시대적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더욱이 10년, 20년 뒤 우리 자녀의 국제적 생존환경을 걱정해야 한다. 국가경쟁력은 대학의 수월성에 달려 있기에 대학들은 우수 학생, 우수 교수, 충분한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이제는 조급함과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학정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문제점들은 인내를 가지고 같이 풀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뢰란 서로 간의 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충분한 대화로 합리적인 사고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요구된다.

민경찬 연세대 학부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