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와히드 축출…급박한 인도네시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인도네시아에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신임 대통령을 임명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아미엔 라이스 국민협의회(MPR)의장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임명됐다고 공식 선포하자 대의원들은 모두 기립, "알라신은 위대하다" 는 구호를 외치면서 열렬히 환호했다. 메가와티의 남편인 타우픽 카메오스 의원은 눈물을 흘렸다.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의사당으로 들어선 메가와티는 감격의 눈물을 애써 참는 모습을 보였다. 곧이어 대통령 좌석으로 이동한 그녀는 취임선서를 한 후 라이스 MPR 의장 앞에서 대통령 임명장에 서명함으로써 대통령 취임 절차를 마무리했다.

메가와티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인도네시아의 다섯번째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이다.

메가와티 신임 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중계된 취임연설에서 "인도네시아가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결과 협력이 필요하다" 며 국민 단합을 강조했다.

그녀는 특히 와히드 전 대통령이 MPR 특별총회에서 결정된 탄핵의 법적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겨냥, "민주주의는 게임의 법칙을 중시한다" 며 결과에 승복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와히드 탄핵을 결정지은 MPR 특별총회장은 긴장이 계속되는 숨막히는 광경을 연출했다. 의원들은 와히드 탄핵을 결정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와히드측의 반격을 우려해 긴장하는 듯했다.

실제로 동부 자바 등지에서 기차편으로 자카르타로 올라온 수백명의 와히드 지지세력은 이날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MPR는 이날 새벽 와히드가 기습적으로 MPR와 국회(DPR)해산 등을 담은 포고령을 발표한데 대한 반격으로 표결을 통해 포고령을 백지화했다.

와히드의 국민각성당(PKB) 등 2개 정당 소속 대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표결에서 투표에 참가한 6백1명 중 2명만이 기권하고 5백99명이 찬성했다.

○…메가와티의 집권에는 군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와히드의 군 개혁조치로 소외감을 느껴온 군이 와히드의 포고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메가와티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권력은 급격히 메가와티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카르타 중부 지역에 위치한 육군본부는 23일 오전 3시30분 주요 지휘관 비상회의를 소집, 와히드의 비상사태 선포를 반대하고 MPR의 결정을 지지키로 결의했다.

군부는 각군 특수부대 요원 2천여명과 수륙양용 장갑차 등 1백여대를 동원, 대통령궁 앞 모나스 광장에서 심야 시가행진을 벌인데 이어 대통령궁을 완전 봉쇄하고 있다.

자카르타= 진세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