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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민족음식 자장·짬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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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52년 동안 수타면만을 고집해 온 서울 마포동 ‘현래장’의 이성규 요리사다. 이씨의 수타면 경력은 35년. 현란한 그의 팔놀림은 기예에 가깝다.

정리=서정민·이정봉·윤서현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추억담 1│아프리카에 갔는데 …

건네준 자장라면을 그는 혼자 먹었다
아, 불면의 밤이여!

유경숙·35·세계축제연구소 소장

2007년 해외공연예술제를 취재하기 위해 1년간 해외를 돌았다. 북미와 남미를 거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은 시골마을에 당도했을 때다. 길 떠난 지 벌써 8개월째. 행색은 꾀죄죄해서 영락없는 노숙자 꼴로 마을 축제를 구경하다 한국 교민을 만났다. 이역만리에서 한국어를 듣다니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서로의 안녕을 빌며 헤어질 때 역시 장기여행자였던 그로부터 자장라면 하나를 선물 받았다. 배낭에 넣고 다니던 2개 중 1개를 내게 준 것이다. 이미 봉지 안의 라면은 부서져 있었다. 먹고 싶은 걸 참으며 아꼈던 티가 났다. 한국을 떠나면 김치 다음으로 생각나는 게 자장면이다. 김치는 아예 꿈도 못 꾸니 어떤 종류의 면발만 봐도 ‘혹시 자장면?’ 하고 상상하게 된다. 비록 자장면을 흉내 낸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그게 어딘가. 너무 좋고 귀해서 ‘정말 힘들 때 먹어야지’ 결심했다. 아직 4개월 이상 여정이 남았으니까. 3주 후에 탄자니아 수도에 도착했고, 허름한 숙소에서 또 한 명의 교민을 만났다. 아프리카 오지 마을만 돌면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이미 수년째라고 한다. 힘을 북돋워주고 싶어서 아꼈던 자장라면을 그에게 주었다. 솔직히 하룻밤 갈등하다 줬다. 그동안 봉지의 자장 냄새는 내게 한국의 냄새였는데 그걸 떠나 보내려니 너무 아쉬웠지만 참았다. 다음 날 외출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부엌에서 자장면 냄새가 진동했다. 아! 그가 자장라면을 끓여 먹은 거다. 혼자서! 그날 밤 여러 종류의 아쉬움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추억담2│무전여행을 하다 …

분수 동전 주워 자장 한그릇 시켰다
그것도 곱배기로

이정섭·40·오디오 엔지니어

대학 1학년 때 여행 동아리에서 제주로 여행을 갔다. 주제는 ‘무전여행’. 왕복 서울~목포 기차표 값과 목포~제주 배 값을 제외하곤 철저히 빈털터리로 10박11일을 버티는 계획이었다. 일행은 10명. 이른 여름이라 푹신한 잔디만 있으면 어디든 텐트를 칠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 먹을거리. 나름 철저히 계획을 세워 일정 동안 필요한 쌀과 라면을 짊어지고 갔지만 과연 밥만으로 위가 만족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면 평소보다 먹고 싶은 게 더 많이 떠오른다. 결국 닷새 만에 우리는 일을 저질렀다. 사건 장소는 천지연 폭포 주변의 분수. 이 안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빌면서 던져 넣은 동전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그것을 주웠다. 그리고 인근 마을의 중국집으로 달려가 자장면 곱배기를 시켜 먹었다. 그 황홀한 맛이란! 지금도 그 일로 혹시 천벌을 받지 않을까 두렵긴 하다.

추억담3│런던 유학 중에 …

기름기 쪽 뺀 한식당 짬뽕
10년 흘러도 군침 도는군

하상백·35·패션 디자이너

10년 전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했다. 서럽고 외로운 유학 시절 힘들고 지칠 때면 소호의 한국음식점 ‘진’을 찾았다. 자장면과 짬뽕을 먹기 위해서였다. 런던 시내 중심에는 그럴듯한 중국음식점이 몇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자장면·짬뽕·탕수육·군만두는 그곳에 없다. 한국 음식점에 가야 먹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학생이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자장면과 짬뽕일 거다. 삶은 면을 물에 헹궈서 기름기를 쪽 뺀 국물 때문에 담백했던 한식당 진의 짬뽕 맛은 지금도 군침이 돈다. 당시에는 ‘가난한 유학생에게 뭔들 맛이 없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런던 유학 시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다시 가보니 진의 짬뽕은 정말 맛있었다. 새로운 사실도 알아냈다. 이 집의 탕수육도 진짜 맛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탕수육은 내게 감히 넘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추억담 4│배고픈 학창시절에 …

짬뽕 면발로 배 채우고
국물은 안주 삼아 밤새 마셨지

오재형·43·게임 프로그래머

80년대 학번은 늘 용돈이 부족했다. 사랑스러운 후배들이 2차를 가자고 할 때는 겁이 덜컥 날 만큼 우리는 가난했다. 90학번 후배들은 꼭 2차를 맥주 집으로 가자고 했었다. ‘역시 신세대는 달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술값이 없다고 술을 못 먹지는 않는다. 맥주와 기름진 안주를 먹지 못할 뿐 우리는 당시 매일 밤 술을 마셨다. 그때 안주는 늘 짬뽕이었다. 학교 앞 중국집에서 짬뽕 몇 그릇을 시켜 면발로 일단 배를 채운 후 기나긴 밤 동안 국물을 안주 삼았다. 짬뽕 국물은 식을수록 기름이 둥둥 뜨고 조미료 냄새는 강해졌지만 신기하게도 남긴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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