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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엄정화 주연 스릴러‘베스트셀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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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집필을 위해 시골 별장에 내려간 인기 작가 희수(엄정화)는 과거 그 곳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에코필름 제공]

베스트셀러 작가 희수(엄정화)는 글을 쓰기 위해 시골 외딴 별장에 어린 딸을 데리고 내려간다. 그는 표절 시비에 휘말려 원치 않는 2년의 공백기간을 보낸 참이다. 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언니’라는 존재가 자기한테 말을 시킨다며 엄마를 귀찮게 한다. 아이의 얘기에 희수는 처음엔 짜증을 내지만, 글이 생각대로 써지지 않자 점차 ‘언니’가 했다는 살인사건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신작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희수는 명예회복을 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조차 표절임이 드러나면서 희수는 위기에 몰린다.

이정호 감독의 데뷔작 ‘베스트셀러’는 미스터리물로서는 드물게 영화 한복판에 반전을 배치했다. 음산한 효과음 등 호러의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반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통상적인 영화문법을 따른다면 반전으로 강펀치를 먹였으니 여기서 영화를 끝내야 맞다. 웬걸, 영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희수는 실제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이런 엄청난 우연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고 사건의 한복판에 몸소 뛰어든다.

“끝없이 뒤가 궁금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게 연출자의 변이다. 딸과 관련된 희수의 사연이 밝혀지는 중반부까지 이런 야심은 비교적 잘 이뤄진 듯 하다. 엄정화의 연기도 좋다. 여배우를 원 톱으로 내세운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요즘 충무로 분위기에서, 그가 단독주연을 꿰찬 이유를 알 것 같다.

특히 정신과 상담 장면에서 극도의 예민함을 표현하는 연기는 감탄스럽다. 단, 여성 관객이라면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을 단선적으로 표현한 듯한 설정에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전직 파출소 소장 역의 이도경, 소장 아들 역의 조진웅 등 조연들도 눈에 들어온다.

‘베스트셀러’가 길을 잃는 건 할리우드식 액션 스릴러로 방향을 바꾸면서부터다. 영화가 홍보 포인트로 내세우는 ‘크로스오버(장르 혼성)’는 결과적으로 영화에 독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내려온 두 남자가 찬식(조진웅)과 만나 외딴집에 숨어드는 데서부터 결말은 예측 가능해지고 영화는 맥이 풀린다.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게 된 희수가 위험에 처하고, 아내의 표절 사실을 의심하던 남편 영준(류승룡)은 아내를 위해 몸을 던진다. 뭔가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인 듯싶어 쫑긋 세워졌던 오감은, 실망감 속에 점점 수그러든다. ‘시크릿’‘평행이론’ 등 최근 등장했던 스릴러물보다 단연 완성도가 높지만, 스릴러로서 플롯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장르를 섞어 안전한 결말을 택한 점은 못내 아쉽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도 “주·조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공포와 스릴러”라고 평했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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