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73. '눈'감은 코리안 빅리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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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은 미국의 명절 핼러윈 데이였다. 학교와 교회, 집집마다 여러 가지 캐릭터로 가장한 어린이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전통에 따라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여덟 살 소년 대린 페슬린도 의미있는 핼러윈 데이를 보냈다. 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야구팀의 포수 마이크 리버달이 주최한 파티에 참가했다. 리버달은 이날 코미디 영화 오스틴 파워의 주인공으로 분장해서 모임을 주도했다. 300명의 어린이와 가족을 멋진 호텔로 초대해 맛있는 음식과 푸짐한 선물을 제공했다.

리버달이 주최한 파티는 필라델피아 지역 병원의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자선행사이기도 했다. 그는 필리스의 주전 포수가 된 1998년부터 매년 핼러윈 데이 자선행사를 하고 있다. 또 자비를 들여 소아암 환자들을 야구장으로 초청한다. 올 시즌에도 3만달러(약 3300만원)가 넘는 입장권을 지역사회 어린이들에게 나눠줬다.

메이저리거의 지역사회 참여는 구단과 사무국에서도 권장한다. 30개 구단은 해마다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선수를 선정하고, 그 중 한 명을 뽑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클레멘테는 72년 니카라과 지진 난민을 위해 구호품을 가지고 가다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을 준다. 올해는 에드거 마르티네스가 그 상을 받았다. 마르티네스는 암연구센터 기금으로 100만달러가 넘는 돈을 모았고, 지역 아동병원과 비영리단체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다.

메이저리거는 이처럼 갖가지 형태로 사회에 기여한다. 평균연봉 250만달러의 고소득자로서 절세(節稅)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높은 이름값, 인지도에 맞는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코리안 메이저리거는? 그들은 한국에서 나름대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미국 현지사회 참여는 거의 없다.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 학교운동장을 지어주는 등 한인 지역사회 활동에 참가했고, 텍사스에서는 자선 집짓기 행사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의 올스타 경력이나 올해 연봉(1400만 달러)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 올해 연봉 325만달러의 김병현은 미국사회와의 창문을 아예 닫아두고 있다.

소극적인 사회참여는 이들이 현지언론으로부터 우호적인 평판을 받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시각은 곧 지역사회의 여론으로 직결되고 동료와의 관계, 팀 내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메이저리거로서 '내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운동장에서 야구만 잘해서 받아내는 박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사회참여를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야구를 더 잘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앞으로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사회참여도 좀 더 다양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하길 기대한다. 박찬호나 김병현이 주최하는 핼러윈 파티, 그들의 기부를 받는 각종 단체, 다양한 형태의 자선행사가 쑥쑥 커지길.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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