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008년 올림픽 유치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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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08년 중국잡지 천진청년(天津靑年)은 ▶중국은 올림픽에 언제 첫 선수를 보낼까▶언제 첫 대표단을 파견할까▶언제 첫 올림픽을 유치할까라는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앞 두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32년 LA올림픽에 중국이 참가함으로써 충족됐다. 세번째 물음에의 응답은 무려 1백년 만인 이번 2008년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중국이 올림픽 유치에 처음 도전한 것은 93년.

당시 모나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개최지 투표 당일인 9월 23일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이날 밤 베이징은 호주 시드니와 4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대 45로 패했다.

당시 베이징이 1~3차 투표에서 모두 앞섰던 상황이라 중국의 충격은 컸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98년 11월 중국은 2008년 올림픽 유치 재도전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99년 4월 7일 베이징은 IOC에 정식 유치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93년엔 자금이 넉넉지 않아 홍콩에 아쉬운 소리를 했으나 이번엔 국가 보조금 8백만달러에 찬조금 1천6백만달러를 확보, 실탄이 풍부해졌다.

이처럼 윤택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중국은 구호보다는 내실에 충실하는 전략을 썼다.

또 육상의 칼 루이스, 탁구의 얀 오베 발드너, 프로복싱의 에반더 홀리필드 등 스포츠 스타들을 초청해 분위기를 돋우었고 6월엔 자금성(紫禁城)에서 파바로티 등 세계 3대 테너를 초청,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여배우 궁리와 쿵후 스타 청룽(成龍), 탁구 스타 덩야핑(鄧亞萍)등을 올림픽 홍보 대사로 임명해 홍보에도 적극 나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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