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미 생명과학기기업체 LT 루시어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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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는 데 열흘 정도 걸립니다. 비용은 5000달러(약 550만원) 정도로 뚝 떨어졌고요.”

미국의 세계적 생명과학 기기·시약업체인 라이프테크놀로지스(LT)의 그레고리 루시어(45·사진) 회장은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본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DNA 염기서열을 USB 메모리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했다.

개인유전체 정보는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A·T·G·C) 염기의 서열 30억 개로 이뤄진다. 10년 전 인간지놈(Genome)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만 해도 이 서열을 알아내는 데 30억 달러의 비용과 5년의 시일이 걸렸다. 장비와 컴퓨터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루시어 회장은 “3년 뒤에는 한 시간 안에 개인유전체 정보를 모두 알 수 있고, 그 비용도 10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신에게 꼭 맞는 항암제와 고혈압치료제 등을 선택해 쓸 수 있는 맞춤의료 시대가 가까이 다가섰다”는 이야기다.

LT는 지난달 삼성의료원·삼성SDS와 제휴해 개인유전체 정보서비스에 뛰어들었다. 맞춤의료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각사의 강점을 앞세워 협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LT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기와 시약 등을, 삼성의료원은 의료전문인력과 항암치료 노하우를, 삼성SDS는 클라우드컴퓨팅 데이터센터에 기반한 첨단 유전체 분석 기술력과 바이오인포매틱스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한다.

“미국의 IBM과 구글·델컴퓨터 등도 개인유전체 정보 서비스 시장에 관심이 많습니다.”

라이프테크놀로지스(LT)의 그레고리 루시어 회장은 개인 유전정보 시장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 시장을 선점할 우군을 한국에서 찾은 것이다. LT의 유전체 분석장비 기술, 삼성SDS의 유전체 정보분석 기술, 삼성의료원의 첨단 의료 노하우를 합치면 승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개인유전체 정보 서비스가 자리 잡으려면 많은 사람, 특히 암환자의 유전자 정보가 모여야 하는데 삼성의료원만큼 적절한 곳이 없어요. 또 많은 정보를 처리하려면 삼성SDS의 클라우드컴퓨팅 센터 등의 기술력과 인프라가 절실합니다.”

LT의 본사는 미 캘리포니아 칼스배드에 있다. 2008년 11월 인비트로젠이 어플라이드바이오시스템스를 인수하면서 회사명을 LT로 바꿨다. 세계적인 생명과학 장비·시약업체의 탄생이었다. 지난해 3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10억 달러가 인간 유전체 분석과 관련된 사업이다. 유전체 분석장비는 대당 9억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다. 세계 생명과학 연구소 10곳 중 9곳에서 LT의 유전자 분석기기와 시약을 쓴다.

개인 유전자 정보가 사회적 차별 등 각종 양극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루시어 회장은 “미국에서는 이미 유전체 차별금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유전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이나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오히려 개인유전체 정보가 나라마다 골칫거리인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항암제 처방의 경우 5분의 1 정도의 환자에서만 약효를 봐요. 개인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체질에 맞는 항암제를 처방받는다면 미국에서 연간 10억 달러 정도의 건보 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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