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천안함 침몰] “살아 돌아와 고맙다” “함께 못 와 죄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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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 장병 39명과 실종자 가족들이 8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에서 만났다. 한 실종자의 어머니가 생존 장병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마치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보는 듯했다. 천안함 실종자 가족 50여 명은 8일 오후 8시 생존 장병 39명을 만났다. 자식과 함께 일하고 자고 먹던 장병들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마치 친자식을 만난 듯 연방 생존 장병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실종자 가족도 생존자도 오열했다. 만남은 1시간40분 동안 이어졌다.

“너희들이라도 살아 돌아와서 고맙다.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니.”

한 실종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질문을 받은 생존 장병의 얼굴은 이내 눈물범벅이 됐다.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던 장병은 “같이 못 와서… 죄송합니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장병의 손을 꼭 쥐며 “한 방에 같이 있었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병은 “아닙니다. 따로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둘은 친어머니, 친아들처럼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살아 돌아왔지만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장병들의 건강을 걱정했다. 서대호(21)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씨는 한 장병을 붙잡고 “우리 대호 목숨이랑 똑같으니까 마음 크게 먹고, 병 나면 안 돼요”라며 다독였다. 장병은 들릴 듯 말 듯한 말을 하며 흐느꼈다. 문규석(36) 상사의 어머니는 한 장병의 손을 잡고 흐느끼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너희라도 살아 돌아왔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문 상사의 아내는 말없이 고개만 떨궜다.

실종자 가족들은 천안함 침몰 당시 자녀가 구체적으로 어디 있었는지를 가장 궁금해했다. 가족들은 자식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싶었다. 한 실종자 어머니가 “기관조정실에 있었는지 어떤지 모르지?”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 장병이 천안함 내 각 장병의 위치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꺼내 가족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고 김태석 상사의 자택(평택 해군아파트) 문 앞에 이웃들이 써 붙인 위로의 글.

생존 장병 가운데는 목발을 짚은 장병, 발보조기를 한 장병, 다리를 저는 장병도 있었으나 모두 불편한 기색 없이 실종자 가족들의 질문에 성실히 응했다. 일부 실종자 어머니는 대화를 잇지 못하고 옆에 놓인 의자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이날 만남은 평택 2함대 사령부 내 정비지구식당에서 이뤄졌다.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한 생존자 58명 중 퇴원한 46명은 당일 오후 2함대로 복귀했다. 이 가운데 39명이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데 동의한 것이다. 당초 식당 내부는 실종자 가족들과 생존 장병들이 마주보는 대형으로 꾸며졌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장병 한 명씩을 붙잡고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족과 장병들이 섞였으며 이산가족 상봉장과 비슷한 모습이 됐다.

이날 만남에 참석한 실종자 가족 중 대부분이 어머니였다. 50명이 어머니였고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은 10명 미만이었다. 전날 기자회견장에 환자복을 입고 나타났던 장병들은 실종자 가족과의 만남에서는 말끔한 군복을 차려 입고 나왔다. 또 전날 기자회견과 달리 군 관계자나 기자도 배석하지 않았다.

실종된 김동진(20) 하사의 어머니 홍수향씨는 생존자와의 만남을 끝낸 뒤 “이제 마음이 편해졌다”며 “우리 아들과 동기인 224기 부사관 두 명을 만났는데 다들 동진이 칭찬만 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선임도 만났는데 우리 아들이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점잖았다고 했다. 천안함이 2함대에서 제일 친목이 두터운 부대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평택=박성우·권희진·남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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