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포괄적핵실험 금지조약 탈퇴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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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에서 탈퇴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당시 CTBT가 "완전히 쓸모없게 됐다" 고 주장하면서 "국가 안보와 핵무기 비확산 정책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 거부의사를 밝혀 왔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CTBT의 사문화를 위해 국내외적인 여론 조성에 나섰다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은 오는 20일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열릴 주요국 정상회담(G8)에서 'CTBT의 검증 방법이 불충분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는 점을 유럽 및 일본 등 동맹국들에 설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조짐은 G8회담 공동 발표문 초안에 들어 있던 'CTBT의 조기 발효를 목표로 한다' 는 문구가 빠졌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미 고위 관리들은 이번 회담에서 CTBT가 아예 의제에 오르지 않을 가능성조차 있다고 내다봤다. 미 정부는 국제적인 반발을 의식해 발표문에 '각국의 핵실험을 자제한다' 는 문구를 삽입할 것이지만 외교적으로 독주하고 있는 미국의 오만한 태도에 관련국들의 비난이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CTBT의 비준안을 사문화하기 위해 상원에서 비준안이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채 부결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미 행정부 고위 관리는 "조약안이 비준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고 단언했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상원에서 비준안이 자연히 소멸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고 전했다. 이에 앞서 미 국무부의 법률 자문팀은 일단 CTBT 비준안이 상원으로 넘어간 이상 비준안을 철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백악관측에 제출한 바 있다.

미국은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주도로 1996년 9월 24일 유엔에서 CTBT에 서명했으나 미 상원이 이미 99년 10월 비준을 한차례 부결한 바 있다.

현재 상원은 의석수가 50대49로 CTBT 비준을 지지하는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비준안 통과를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2의 동의가 필요해 비준안 통과가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뉴욕 타임스 등 미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집권 6개월간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폐기와 기후 온난화 방지 협약인 교토 의정서의 파기를 추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핵실험 금지조약마저 사문화하려 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인 마찰을 계속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권하 기자

▶ CTBT란

▶ CTBT란

CTBT는 대기권을 포함해 수중.지하 등 모든 형태의 핵폭발 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1996년 9월 미국 빌 클린턴 정부의 주도로 세계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만들려면 핵무기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세계 1백61개국이 서명한 이 조약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발전용 또는 실험용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는 44개국의 비준이 완료돼야 발효된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국 중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중국.인도.파키스탄 등은 비준을 미루거나 아예 거부하고 있다. 현재까지 77개국이 비준했지만 44개 의무비준국 가운데 비준을 마친 나라는 한국.일본 등 31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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