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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그게 북한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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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천안함을 인양해 부서진 선체에 대한 ‘부검’을 하고 해저에서 파편 몇 조각이라도 회수해 성분을 분석하면 사고 원인이 밝혀질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은 사고 원인이 밝혀진 이후다. 사고 원인에 대한 예단을 경계하는 말만 하던 이 대통령이 7일을 기해서 사고 원인을 사건을 일으킨 자들이 오리발 내밀지 못하게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밝혀 거기에 합당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원인 규명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파편 한 조각을 분석하는 데도 미국의 협조를 얻어 북한이 가령 이란 같은 외국에 수출한 어뢰나 기뢰의 파편을 입수해 비교 분석해야 객관성이 확보된다. 선체 인양도 급한 우리 사정과는 달리 백령도 주변의 바람과 조류 같은 자연조건에 많이 좌우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자는 것이다. 천안함 생존 선원들의 기자회견으로 의혹이 많이 해소되었으니 선체 인양과 민·군 조사단의 활동에 장애가 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다만 기뢰나 어뢰 공격으로 배가 침몰했다면 사고지역 주변이 그렇게 깨끗할 수 있는가, 공군 전투기들은 왜 사고 후 1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에 출동했는가 등은 밝혀져야 한다.

‘결론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부 요인이면 군 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일은 끝난다. 사고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조치가 가능한가. 그것은 동북아 국제정치와 남북관계와 핵 협상의 큰 틀에서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예단하지 말자는 말을 되풀이하다 2일에는 국회에 나간 국방부 장관에게 북한 개입으로 치우친 발언을 하지 말라는 VIP메모를 보내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 대통령의 고민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나 기뢰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확실한 결론이 나와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조치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사건 후 한 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 북방한계선(NLL) 너머에 있는 북한의 잠수정 기지나 해안포 기지에 물리적인 공격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공격이 촉발할 국지적인 충돌 같은 파장을 생각하면 그것은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가장 낮은 선택이다. 경제적인 제재는 가능한가.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개성공단 말고는 북한에 돈 넘어가는 루트를 모두 차단했다. 그래서 북한에 고통이 되고 부담이 될 지렛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결국 외교적인 제재가 남는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유엔 안보리 제소가 암시되었다. 북한 개입의 확실한 물증이 나오면 사건을 안보리로 가져가서 북한의 도발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럴 경우 북한이 취할 태도는 예측 가능하다. 북한은 일단 모르쇠로 나올 것이다. 그러다 궁지에 몰리면 남한 함정이 해상경계선을 넘어 북한 영해를 침범한 데 대한 자위행위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지도 모른다.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은 백령도 남쪽이다. 안보리에서 중국이 취할 태도도 미지수다. 그게 북한이면 북한 급변사태까지 시야에 둔 북한 대책을 다시 세우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책임을 묻는 조치와는 별도로 군의 신뢰 회복과 대통령의 리더십 복원이 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군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국방부 장관은 북한 개입을 예단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번번이 묵살하다 문제의 VIP메모를 받았다. 안보상 위기 대처에 난맥상이 노출되고 대통령의 리더십이 휘청거렸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정부와 군은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무책임하고 상식 이하였다. 천안함과 함께 반쯤 물에 잠긴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회의 양식과 군의 신뢰를 구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