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26. 영어 실력

백련암은 '시주물을 화살인 듯 피하라' 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능한 한 자급자족하는 살림을 지향했다. 그러다보니 울력(공동작업)이 많아 힘도 들었지만, 한 철을 지내면서 속세에선 느끼기 힘든 생산의 기쁨을 직접 맛보는 재미도 적지않았다.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감자 수확이다. 감자는 초봄에 씨눈을 심어 7월이면 수확한다. 4월 초 어느 저녁 원주스님이 "감자 씨눈을 따야 한다" 며 두가마니쯤 되는 감자를 방바닥에 풀어놓았다.

스님들이 작은 칼을 들고 감자를 조각내고 있었다. 원주스님이 "감자 씨눈은 이렇게 따야 한다" 고 자세히 가르쳐주지도 않고, 또 물으면 "옆에 스님들 하는 것 보면 모르느냐" 고 핀잔을 주기에 대충 눈짐작대로 감자를 그냥 1~2㎝ 간격으로 납작하게 베어 갔다. 작업을 하면서 떠들고 웃다보니 성철스님 처소까지 소리가 울렸나 보다. 큰스님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너거 뭐 하는데 그리 시끄럽노. 아, 벌써 감자 심을 때 됐나. 감자 씨눈 따고 있구만. "

큰스님은 금방 노여움을 거두고 작업 중인 제자들의 모습을 쭉 둘러보셨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작업해 놓은 곳에 눈을 멈추시더니 한마디 했다.

"야, 임마!

니, 감자씨 따논 거 한번 들어봐라. "

납작하게 저며놓은 감자를 집어 올려 큰스님 앞으로 보였다.

"니 한 거 하고 남 한 거 하고 비교해 봐라. "

내 눈에는 뭐가 다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원명아(현 연등국제선원 원장), 저 바보 대구 놈한테 감자 씨눈 따는 거 좀 가르쳐 줘라. 그 놈, 딱하기는 참. "

큰스님이 혀를 끌끌 차며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자 표면에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그 곳에 씨눈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 그 씨눈을 중심으로 아래위로 대략 삼각형 모양으로 살 두껍게 잘라내는 것이 씨눈 따는 법인데, 나는 씨눈을 무시하고 저며놓았으니 씨눈을 딴다는 것이 작살을 낸 꼴이었다.

해프닝이 있고 며칠 지나 백련암 앞 텃밭에 씨눈을 심었다. 골을 내고 30㎝ 간격으로 씨눈을 뿌린 뒤 그 위에 흙을 붕긋하게 덮어주는 것으로 울력이 끝났다. 봄볕이 한창이라 산중에 진달래가 만발해 온산이 말 그대로 울긋불긋한 무렵이었다.

마냥 피곤하던 울력이 노동의 기쁨과 보람으로 바뀐 것은 7월 감자수확 때였다. 묻혀 있는 감자에 상처가 나지 않게 고랑 깊이 호미를 넣어 긁어냈다. 흙더미사이로 미끈하고 허연 감자가 쑥쑥, 주렁주렁 올라온다. 큰 놈은 주먹만했고, 작은 놈은 메추리알같이 작았다. 감자 씨눈 딸 때 야단맞았지만 영근 감자를 캐올리니 신바람이 났다.

큰스님이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감자 추수 직후였다.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위해 텃밭을 삽으로 갈아엎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투른 삽질에 정신없는데 큰스님이 내려와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옆의 스님에게 "수군포(삽) 좀 주이소"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큰스님이 물었다.

"이놈아, 니 수군포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아나. "

"대구서는 삽을 그냥 수군포라고 합니다. "

큰스님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글쎄! 왜 그 말이 생겼는지 아냔 말이다. "

대구 사투리려니 생각하고 있던 터에 할말이 없어 멍하니 눈만 굴리고 있는데, 큰스님이 빙긋이 웃는다.

"임마!

영어로 삽을 스쿠프(scoop)라 하지않나. 그거를 혀 짧은 일본놈들이 수구포, 수구포 하니까 경상도 사람들이 뭣 모르고 수군포, 수군포 한 거 아이가. "

수군포의 어원이 영어임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큰스님은 영어까지 아시는가?"

나는 그 때까지 큰스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