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돈 많이 빌렸네 … 지난해 이자 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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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해 빌린 돈을 갚은 것은 없다. 금리가 낮아졌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한 해 이자비용이 4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에쓰오일 김평길 부장의 말이다. 이 회사는 이자로 지불한 돈이 2008년 1396억원에서 지난해 1002억원으로 감소했다. 금융위기에 대응해 한국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편 덕을 봤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일까. 오히려 반대였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들의 이자 지급액은 12조5595억원으로 1년 전의 10조1478억원에 비해 23.8% 늘었다. 12월 결산법인 중 2008년과 수치를 비교할 수 있는 553개사의 재무제표를 한국거래소가 들여다본 결과다. 상장사들이 지난해 돈을 많이 빌렸다는 얘기다.

돈을 빌린 이유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잘나가는 기업들은 금융위기 속에서 투자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낮은 이자에 자금을 조달했다.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롯데쇼핑이 중국의 대형마트 타임스를 인수하는 등 해외 사업을 확장하면서 빚을 냈다. 이로 인해 그룹 상장사들의 이자비용이 2008년 457억원에서 지난해 1495억원으로 증가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 자금을 준비하면서 부채가 늘었다. 삼성전자의 이자 지급액은 2008년 500억원이었다가 지난해에는 1242억원이 됐다. 이 회사는 “빚을 낸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라 미래에 기술료로 지급할 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이자비용에 포함하는 바람에 금액이 늘어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달랐다. 중기중앙회 정책총괄실의 황영만 금융담당 과장은 “경기가 나빠 운영자금을 마련하려고 돈을 빌린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중에서는 SK그룹의 지난해 이자 지불액이 1조306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중공업그룹이 438억원으로 가장 적었다. SK는 “유전 개발 같은 투자처가 나타나면 바로 쓰기 위해 현금을 쟁여두고 돈을 빌려 원유 수입 등에 쓰기 때문에 이자가 많이 나간다”고 설명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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