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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미혼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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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영국 런던대 ‘인지 신경학 연구소’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청소년들이 위험한 운전이나 과격한 행동,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등을 하는 것에는 과학적으로 명백한 이유가 있단다. 다른 연령대보다 위험스러운 상황의 짜릿함을 즐기도록 프로그램화돼 있기 때문이란다.

불법 낙태 고발 사건 이후. 예기치 못한 임신을 했는데 어디 가면 낙태를 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여성단체이다 보니 다급한 마음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요청하는 것인데. 안타까운 마음이야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도움도 못 주고 전화를 끊고 만다. 다른 단체도 문의 전화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낙태 비용이 열 배까지 뛰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도 의사 찾기가 힘들단다. 소문 내고 하던 일은 아니어도 요즘은 지하로 숨어들어가 밖으로는 조용하다. 조용하다면, 낙태 못한 아이들이 속속 태어날 준비 중이라고?

돈 있는 사람들이야 벌써 낙태를 했거나 앞으로도 필요하면 계속할 것이다. 과거보다 몇십 배의 돈을 주고 국내에서 하거나 외국으로 원정을 가거나. 불쌍하게도,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힘 없는 10대들만이 우왕좌왕 눈치만 보다 때를 놓쳐서 원치 않는 애를 낳게 될 것이다. 특히 10대 임신은 낳을 능력, 키울 능력도 없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아이가 아이를 낳는 꼴이다. 기다리던 아이가 아니니 환영 받지도 못할 것이다. 살면서 힘든 고비마다 평생 원망의 대상만 될 것이다. 평생 원망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회에 나오면 사회를 원망하게 된다. 사랑 받고 자란 아이라야 사랑도 제대로 할 줄 알고 바른 아이로 자란다.

임신한 여고생도 교육 받을 권리, 여성으로서 지위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정부에서 청소년 싱글맘 자립 지원 예산을 121억원 책정해 놓았단다. 어쩔 수 없이 낳았다면 여고생이라 할지라도 교육은 받아야 하겠지만. 12만원의 보조금 받으면서 애 키우며 고등학교는 간신히 졸업했다 치자. 그 다음은? 대학 졸업하고도 결혼해서 애 키우며 일하기 힘들다고 애를 꺼리는 판인데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121억원의 예산이나 미혼모에게 주는 12만4000원의 지원금이 설마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낸 아이디어는 아닌지. 철부지 10대의 임신한 여학생들을 모조리 미혼모 싱글맘으로 만들 작정인지. 가슴이 답답하다.

인공적인 힘을 빌려야만 호흡할 수 있는 뇌사자를 완전한 생명으로 인정하기 힘들듯이 배 속의 태아도 완전한 생명이라고 보기 힘들다. 완전하지도 않은 태아의 생명을 살리려다 철부지 10대들의 미래가 다 죽는다. 괜히 ‘생명권’ 운운하면서 어린 10대의 창창한 앞날에 물 뿌리지 말고 발목도 잡지 마라. ‘보조금도 주고 애 낳고도 학교에 갈 수 있다니 낳아서 죽을 때까지 네가 책임져라. 일찌감치 네 꿈은 포기하고’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바로 당신 딸이라면?

엄을순 문화 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