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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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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파라과이 동부의 열대우림엔 '아체'라는 종족이 있다.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는 원주민이다. 이들은 혼자 짐승을 사냥해 와도 마을의 구성원 모두와 나눠먹는다. 반면 열매나 과일과 같은 채집물은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돼 가족끼리만 나눈다. 채집이냐 사냥이냐에 따라 분배의 범위가 다르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관습이라고 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힐러드 카플란과 킴 힐 교수는 아체족을 관찰한 끝에 1985년 인간의 분배행위에 관한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두 교수는 사냥으로 잡은 고기와 채집에 의한 열매.과일의 분배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데서 분석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이들은 그 차이를 '자원획득의 확실성'에서 찾았다. 열매나 과일은 누구나 노력하면 안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수확이 예측가능하고 확실한 편이다. 그러나 사냥은 다르다. 괜찮은 사냥감이 늘 잡혀주진 않는다. 노력해도 허탕치는 경우가 있다. 육류는 공급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냥에 계속 실패할 경우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를 잃게 된다.

아체족은 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냥으로 얻은 육류를 구성원 모두가 나눠먹게 됐다는 것이 카플란과 힐의 주장이다. 내가 사냥해온 고기를 남과 나눠먹음으로써 다음 사냥에서 빈손으로 돌아와도 남이 잡아온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다. 이때 현재의 분배는 미래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고기를 나눠먹는 것은 사냥에 실패할 위험(리스크)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플란과 힐의 주장은 '리스크 분산설'이라고 불린다.

이 논문은 인간의 분배행위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인류학계에선 분배가 이념이나 철학과는 별도로 인류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깨달은 생존전략의 하나라는 주장이 나왔다. 원하는 것을 늘 얻을 수 있을지 불확실할 때는 나눔이 독점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보인 학자도 있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땀 흘려 번 것에 대해선 쉽게 분배의 척도를 들이밀면서도 언제 잃을지 불확실한 정치권력은 서로 독점하려 들지는 않는지. 아체족이 보여준 '나눔의 지혜'가 아쉽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