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류학자 힐러드 카플란과 킴 힐 교수는 아체족을 관찰한 끝에 1985년 인간의 분배행위에 관한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두 교수는 사냥으로 잡은 고기와 채집에 의한 열매.과일의 분배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데서 분석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이들은 그 차이를 '자원획득의 확실성'에서 찾았다. 열매나 과일은 누구나 노력하면 안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수확이 예측가능하고 확실한 편이다. 그러나 사냥은 다르다. 괜찮은 사냥감이 늘 잡혀주진 않는다. 노력해도 허탕치는 경우가 있다. 육류는 공급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냥에 계속 실패할 경우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를 잃게 된다.
아체족은 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냥으로 얻은 육류를 구성원 모두가 나눠먹게 됐다는 것이 카플란과 힐의 주장이다. 내가 사냥해온 고기를 남과 나눠먹음으로써 다음 사냥에서 빈손으로 돌아와도 남이 잡아온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다. 이때 현재의 분배는 미래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고기를 나눠먹는 것은 사냥에 실패할 위험(리스크)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플란과 힐의 주장은 '리스크 분산설'이라고 불린다.
이 논문은 인간의 분배행위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인류학계에선 분배가 이념이나 철학과는 별도로 인류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깨달은 생존전략의 하나라는 주장이 나왔다. 원하는 것을 늘 얻을 수 있을지 불확실할 때는 나눔이 독점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보인 학자도 있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땀 흘려 번 것에 대해선 쉽게 분배의 척도를 들이밀면서도 언제 잃을지 불확실한 정치권력은 서로 독점하려 들지는 않는지. 아체족이 보여준 '나눔의 지혜'가 아쉽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