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수 가족 탈북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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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길수군 일가족은 이번에 모두가 난민 지위를 신청하지는 못했다. 중국에 있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일은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위험이 있는 '목숨을 건 도박' 이었기 때문이다.

탈북한 張군 일가와 친척 등 네 가족 16명 가운데 지난 3월 체포돼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張군의 어머니 정순실(46)씨 등 북한에 있는 네명은 난민 지위 신청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張군 가족의 진짜 비극은 중국에 은신해 온 12명의 나머지 가족마저 행동을 같이 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장군을 비롯한 일곱명은 베이징의 UNHCR 사무소에 들어가 그토록 절실한 자유를 구했지만 나머지 다섯명은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난민 심사과정에서 잘못돼 북한에 강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들을 '탈북자 이산가족' 의 상황으로까지 내몬 것이다. 다섯명은 탈북자들이 통상적으로 이용하는 다른 경로를 통해 중국을 빠져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장군 일가.친척 네 가족의 탈북 대장정은 1997년 3월 함경북도 회령에 살던 외할머니 김춘옥(68)씨가 두만강을 넘으면서 시작돼 99년 8월까지 이어졌다. 탈북 이유는 남편이 중국에서 귀국한 '성분 미해명자' 로 분류돼 극심한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

이후 金씨는 "20명은 넘어야 한국에 쉽게 갈 수 있다" 는 말을 듣고 가족들의 대탈출을 결심했다. 98년 2월에는 목숨을 걸고 재입북, 남편 정태준씨 등을 데리고 나왔고 지난해 1월엔 張군 등 다섯명을 빼내왔다.

탈북이 완료된 후부터 최근까지 1년10개월 동안은 중국 공안과 북한 공작원의 눈을 피해 중국의 곳곳을 전전하며 피말리는 도피생활의 연속이었다. 이 와중에서 지난 3월 어머니 정씨 등 다섯명은 탈북자의 밀고로 북송됐으며 이중 외할머니 한명만이 재탈북에 성공했다.

서울에 있는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 는 26일 "張군이 북한을 탈출했다 강제 송환된 이모를 구출하는 데 쓸 1백달러 지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비닐에 싼 뒤 입 속에 며칠 동안 물고 있었고 이 때문에 입 언저리가 부어 말을 못할 정도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고 전했다. 장길수군과 형 한길(20)씨는 99년 서울 NGO대회에서 북한 실상을 폭로한 탈북 소년화가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으며, 뉴스위크와 영국 가디언 등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張군 일가족은 도피생활에 필요한 경비 조달이 어려워진데다 한달 전 몽골로 탈출을 시도했다 좌절되자 목숨을 담보로 난민 지위 신청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난민 신청과 유사한 사례는 99년 12월 말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당시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의해 체포된 박충일씨 등 탈북자 7명은 천신만고 끝에 모스크바 UNHCR의 도움으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탈북 스토리가 러시아 TV방송 등을 통해 전해지면서 국제문제화하자 이들은 중국으로 추방당했고 중국 정부는 신병을 인도받은 지 불과 여섯시간 만에 이들을 다시 북한으로 송환했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 난민은 없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 때문이었다.

이번 난민 신청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그때와 다르다. 유엔인권위원회 가입과 올림픽 개최를 추진 중인 중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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