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장수왕의 高麗와 밴쿠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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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6 은6 동2개로 모두 14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태극기가 14번 게양되어 올라갔고 "코리아"라는 이름이 14번 불리웠다. 남북한을 한자권에서는 한국과 조선으로 서로 다르게 부르지만 영어권에서는 모두 오래전부터 알려진 高麗의 발음을 서양의 알파벳트로 “코리아”(Corea, Korea)라고 부른다.
한반도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7세기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정립하였다. 그 중 고구려는 제 20대 장수왕(394-491)때 국호를 高麗로 바꾸었다. 충주에 있는 장수왕이 세운 비석(중원고구려비)에는 자신을 “高麗大王”으로 밝히고 있다. 광개토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아버지가 이루어 낸 북방의 넓은 영토에 추가하여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한반도 남쪽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고구려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가진 국력이 가장 번성한 때였다. 그는 19세에 왕이 되어 재위 79년에 98세까지 생존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9988”을 처음으로 실천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에도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재위 및 생존기간 모두 장수한 국왕의 시호를 “長壽”라고 하였던 것 같다. 대외관계도 활발하여 일본과 중국등 인근국에도 널리 알려져 일본과 중국의 역사서에는 고구려의 국명은 보이지 않고 모두 "高麗"로 표기되어 있다.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668년 고려(고구려)가 멸망되자 수많은 귀족 및 승려들이 일본으로 망명한다. 고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若光은 고려 유민을 이끌고 지금의 도쿄(東京) 인근 히다카(日高)시에 모여 살았다. 일본에는 그들이 세운 마을, 신사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온 개가 전해지고 있다.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고려촌, 고려신사, 고려견이 그것이다.
베이징(北京)에는 1300년의 역사를 가진 法源寺라는 천년사찰이 있다. 고(구)려원정에 실패하고 回軍중이던 唐太宗이 당시 幽州(지금의 베이징)를 지나가면서 전쟁에서 순국한 (唐)군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건립하였다. 절의 이름을 憫忠寺로 불렀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가엽게 여기고 기린다는 뜻이다. 그 후 淸代에 와서 法源寺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절간에는 당태종의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다. 절을 건립한 연유를 밝힌 것으로 태종이 “고려정복(征高麗)”의 경위를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
舊唐書등 중국의 많은 史書에는 고구려라는 나라는 없고 항상 고려가 나온다. 8세기 파미르고원을 넘어 唐의 영토를 서역 전체로 확장시킨 공로로 안서도호부 절도사가 된 唐의 高仙芝장군도 高麗人으로 소개하고 있다.
베이징 왕징(望京) 인근에 高麗營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곳은 베이징이 幽州시절 고려유민의 집단 거주지로 당시 山東省의 新羅坊과 유사한 기능을 하였다고 한다.
918년 태조왕건이 개경에서 나라를 세우고 국명을 고려라고 한 것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고(구)려왕국의 복원이었다. 우리역사에서 왕조 구분상 고구려와 고려를 따로 사용하다 보니 서양에서 우리나라가 코리아로 처음 알려진 것은 왕건이 세운 고려때 부터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이 보다 수백년 앞서 국제도시 唐의 수도 長安에 온 서역인들이 장수왕의 高麗(고구려)를 기록해 가서 알렸기 때문이다.
고려인(김부식)이 삼국지를 편찬하다보니 고구려, 고려의 구분을 엄격히 하게 되었겠지만 지금의 역사서에는 前고려, 後고려로 한다면 우리의 “코리아”가 고구려에서 기인된 사실을 더욱 알기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隋양제며 唐태종은 “고려정벌”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의 역사서에서만 유독 “고구려정벌”이라고 고쳐 쓰고 있다.
밴쿠버에서 14번이나 호명된 코리아가 장수왕의 코리아임을 생각한다면 5세기 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판도를 가졌던 장수왕의 정신을 이어 받은 21세기의 고려인(코리안)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최고 세계 5위의 코리아로 거듭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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