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의조정 기간만 거치면 불법파업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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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10~15일의 조정기간만 거쳤다면 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 를 따르지 않았더라도 불법은 아니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당국은 민주노총의 6.12 연대파업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와 전북대병원 노조 등 상당수 사업장에 대해 노동위의 행정지도를 무시했다며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제1부(주심 徐晟대법관)는 26일 중노위의 '노사간 교섭을 더 진행하라' 는 행정지도 결정을 어기고 파업에 돌입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현대자동차써비스 노조 충북지부 李길호(46)지부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조가 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한 후 조정 절차가 마쳐지거나 조정이 종료되지 않은 채 조정 기간이 끝나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반드시 노동위원회가 조정 결정을 한 뒤에 쟁의행위를 해야 정당한 것은 아니다" 고 덧붙였다.

李지부장은 1998년 초 사측에 정리해고시 노조와 사전 합의,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교섭을 벌였으나 진척이 없자 4월 28일 노동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한 뒤 행정지도 결정(5월 8일)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돌입(같은 달 27일)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측은 "이번 판결로 노동위가 조정 결정을 조정기간이 지나도록 계속 유보해 결과적으로 단체행동권을 제약할 위험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고 설명했다.

대법원측은 그러나 "노동위의 조정 결정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파업이 합법으로 인정받으려면 ▶파업의 이유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등에 국한돼야 하며▶파업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어야 하고▶시기가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고 단서를 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업장별로 파업 이유와 노사 교섭 상황이 다른 만큼 이 판결을 모든 사업장에 일반화해 적용할 수는 없다" 고 밝혔다.

검찰은 또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경우 노사 교섭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았고 연대파업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파업을 강행한 만큼 명백한 불법이었다" 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측은 "당국이 행정지도를 이유로 많은 사업장의 쟁의를 불법으로 몰았던 결정이 잘못된 것임을 확인시켜 준 판결" 이라고 평가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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