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사를 부도덕 집단으로 몰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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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상한 관심 속에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됐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20일 일부 발표됐다. 국세청은 23개 중앙 신문.방송사에 대해 모두 5천56억원의 세금을 추징키로 했으며, 이와 별도로 소득탈루 혐의가 있는 6~7곳은 고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수차 지적했듯이 법과 제도에 따른 통상적 세무조사, 그리고 불법 행위에 대한 당국의 정당한 지적에 대해 결코 반대하지 않고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세무조사는 시작부터 발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정상적 관행.절차를 벗어난 '예외상황' 의 연속으로, 그 목적이 역시 언론 흠집내기에 있은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국세청이 지난 2월 초 수백명의 인력을 투입해 동시다발적으로 조사에 들어간 것부터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6월 19일 조사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결과를 발표한 것 역시 전례가 드문 일로, 일찌감치 결론이 나 있었다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5천억원이 넘는 추징액 역시 단일 업종으로는 국내 사상 최다액이다. 대부분 언론사의 연간 매출이 3천억원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중소기업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는 상식 밖으로 많은 것이며, 결과에 따라 일부 언론사는 존립까지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이 됐다.

국세청은 지금까지 통상 조세범으로 고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면서 탈루 유형.금액까지 구체적으로 밝힌 것도 모자라 며칠 후 다시 고발 대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한 조사 결과를 수차 발표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모든 언론사를 도매금으로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해 망신을 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이번 세금 추징에는 또 세무당국의 자의적 해석과 법 적용이 너무 많이 개입됐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국세청은 유가지의 20%가 넘는 무가지(無價紙)등에 6백88억원을 추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신문산업의 특수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무가지 기준은 공정거래위의 옛 고시를 준용했는지 몰라도, 이는 세법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무가지와 무료광고 등은 신문업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자 관행으로 결코 수입을 빼돌리는 행위가 아닌데도 여기까지 거액의 세금을 물린 것은 지나치다. 신문업은 또 일반 제조업과 달리 기자들이 생산수단이자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주 수입원인 광고유치 비용은 일반 기업의 제품 광고.판촉비나 다름없는데도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모두 접대비로 간주한 것도 잘못이다.

정부가 세무조사 결과와 동시에 논란이 돼온 신문고시(告示)를 발표한 것도 일련의 언론 압박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특히 이번 고시에는 중앙.조선.동아 등 소위 '빅3' 에 대해서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표적수사에 나설 수 있는 독소조항이 숨겨져 있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언론사 전체를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여 건전한 비판기능을 약화시키려는 정부 의도가 있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향후의 사태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자 한다.

만약 정부 주장대로 원칙에 입각한 정상적 세무조사라면, 조사 결과를 언론계 흠집내기 대신 언론의 건전한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관행을 고치는 데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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