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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무엇 때문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2일 시작된 파업사태는 시기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고들 한다. 전국 논밭이 타들어가고 일부 지역주민이 식수난에 허덕이는 가뭄상황 때문에 국민의 파업 혐오증이 깊어졌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가뭄의 물고생이 끝나는 마당이니 다시 파업열기가 뜨거워질 호기라는 얘긴가.

***민노총의 명분 문제 없나

이번 연대파업은 시기보다 민주노총이 내세운 명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 민주노총의 슬로건을 훑어보자.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철폐, 비정규직 차별 철폐, 개혁입법 반대, 현정부 퇴진, 미사일방어(MD)체제 반대 등이다.

크고 작은 사회현상을 바로 보려면 '그것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를 따지는 시각에서 관찰하고 분석하는 자세가 효과적이다. 라틴 말로 퀴보노(cuibono)라 한다. 파업의 직.간접 이해 당사자는 관련기업의 주주.경영자.노동자.고객, 실업자, 불특정 다수의 국민 등이다. 이번 민주노총 파업 구호가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살펴보자.

옛소련 붕괴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이 불량국가 또는 집단 등의 장거리 유도탄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우려해 서두르고 있는 MD체제를 반대해 누가 득을 보나. 불량국가를 인접에 두고 오래 살아온 탓인지 한국은 위협의식이 마비돼 있다. 민주노총은 MD 반대의 세계적 유행을 따르자는 것인가, 누구의 계산된 이득 때문인가.

현정부 퇴진 요구는 무엇인가. 18개월 후 대선 때가 되면 유권자들의 투표로 정권 향방이 결정된다. 아마도 정부 압박용인 듯하다. 정치적 요구를 파업 쟁점으로 삼는 민주노총의 힘이 커질수록 그것이 일반 국민의 이득으로 연결된다고 기대할 순 없다.

개혁입법의 국회 통과 저지는 또 누구에게 득이 되는가.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추진해온 각종 구조조정이 왜 문제인가. 지난 3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만 희생 당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고통분담이 설득력이 적다고 한다. 노동자들만 아니라 파산한 수많은 기업인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이 고통 겪은 것도 아니다.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 주축들의 경우 철밥통이 건재하고 이들의 고임금에 밀려 하청기업의 임금수준이 깎인 추세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파업의 주역인 민항기 조종사들의 경우 이제까지 구조조정도 적었고 임금도 높다. 선진국 출신 기장에 주눅들고 개도국 출신 기장에 배알 뒤틀려 나온 국적시비는 세계를 누비고 다닌 파일럿으로 남부끄럽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파업세력 확장을 노린 구호로 보인다.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철폐 요구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인정되는 구호다. 기업의 우수인력을 회사 내에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순환적 불경기에도 잉여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기업경영의 관행이다. 그러나 기업의 도산위기에 직면해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밟는 경우 정리해고는 으뜸되는 원칙의 하나다.

***정부부터 원칙을 지키자

마지막으로 파업 전략은 어떠했나. 우리나라의 파업은 경영자와 노동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흔히 정부가 개입하는 3자 구도로 전개된다.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의 파업사태도 정부가 자율에 맡기지 않는다. 파업사태 수습을 독촉하는 정부의 입김은 경영자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타협 내용은 경영자의 대폭 양보를 담은 것이 상례였다. 이를 간파한 노동계가 정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면 정부부터 원칙을 지켜야 한다. 파업을 해도 법질서 테두리 안에서 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번 대우 노동자 시위 때 부상 노동자들의 보도에 열 올리던 대중매체들이 이번 폭력시위에 맞서 질서를 지키다 쓰러진 일선 경찰서장의 보도에 인색하다.

불법.무질서.격렬시위에 매력을 느껴 들어올 외국자본은 없다. 세계화 시대에 국내기업의 입지는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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