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패배한 대만 '은탄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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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발칸반도 남부에 있는 인구 2백만명의 소국 마케도니아는 1991년 옛 유고연방에서 독립했으나 이웃한 그리스가 자국에 같은 이름의 주가 있다고 항의하는 바람에 유엔에는 '옛 유고연방 마케도니아(FYROM)' 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중국과 대만이 최근 몇년 동안 마케도니아를 놓고 '양안 외교전' 을 펼쳤다.

1999년 2월 독립 직후의 상황을 보자.

원래 가난했던 마케도니아는 독립 후 내전까지 겹쳐 당장 국민을 먹여살릴 방도가 막연했다. 주변에 돈 한푼 꾸어주겠다는 나라가 없었다. 이때 대만이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대만은 현금으로 2천만달러를 건넸다. 1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저리의 장기차관과 기술공여도 약속했다. 리덩후이(李登輝) 당시 대만총통은 도로.항만건설 등의 건설을 위해 장기적으로 10억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조건은 '대만과의 수교, 중국과의 단교' 였다. 마케도니아는 동의했다.

대만은 이처럼 마케도니아에 정성을 들여 처음으로 유럽지역에 외교 교두보를 마련했다. 바티칸과도 외교관계가 있으나 이는 '특수한 국가' 라 마케도니아와의 수교가 유럽국과 맺은 최초의 수교인 셈이다.

2001년 6월. 마케도니아는 대만을 팽개치고 다시 중국 쪽으로 돌아섰다.

가장 큰 이유는 마케도니아가 안보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마케도니아 내 소수민족인 알바니아계는 92년 초부터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케도니아에는 유엔군이 주둔했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대만과 수교한 마케도니아를 응징한다며 '마케도니아에 대한 유엔평화유지군 6개월 연장주둔안' 에 거부권을 행사해 99년 봄부터 유엔군이 주둔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수백명의 미군이 유엔군에서 지위를 변경해 비공식적으로 주둔해 있고 코소보 평화유지군 병력만 병력 교대 차원에서 오고갈 뿐이다.

알바니아계 반군의 활동은 점점 거세지고 있고 독자적인 안보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케도니아는 이제 돈보다 든든한 방패가 절실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8일 마케도니아의 일린카 미트레바 외무장관이 중국과의 국교 재개를 공식 발표하면서 "우린 안보리 상임이사국 친구가 필요하다" 고 말한 것은 이런 입장을 반영한다.

달러를 앞세운 대만의 '은탄(銀彈)외교' 가 13억 인구를 등에 업은 중국의 대표성에 무참히 눌리는 순간이었다.

진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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