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외자유치… 큰 고비 넘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해외 주식예탁증서(GDR)발행을 통해 12억5천만달러(1조6천1백40여억원)의 외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에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큰 고비는 넘겼다" 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GDR 발행 성공은 채권 금융기관의 하이닉스 회생안을 시장이 수용했다는 의미" 라고 평가했다.

외자유치 과정을 애태우며 지켜본 채권단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환영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실무자는 "추가 발행을 포함해 1조8천억원 이상의 외자만 유치되면 전환사채(CB)인수 등 당초 채권단이 약속한 하이닉스 지원계획을 이달 중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은행들도 고비를 넘긴 셈이다. 12억5천만달러의 자금이 들어오면 하반기 환율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 예상을 웃돈 규모로 발행〓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홍콩.유럽에서 투자자 유치를 위한 로드쇼를 할 때는 큰 반응이 없었는데 로드쇼 막바지에 미국에서 호응이 컸다" 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외에도 투기성이 아닌 장기 투자자들이 큰 금액의 GDR를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덧붙였다. 그는 초기에 거론된 뉴브리지 캐피털은 청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이닉스는 당초 10억달러의 GDR과 3억7천만달러의 하이일드채권(고수익채권)을 발행해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로드쇼를 시작하기 직전 GDR 8억달러, 하이일드채권 3억5천만달러 등 1조5천억원으로 줄였다가 막판에 GDR만 12억5천만달러를 발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당초 예상보다 시장 반응이 좋아 높은 금리의 하이일드채권 발행을 취소한 것이다. 주간사를 맡은 샐러먼 스미스바니 관계자는 "반도체 경기가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하이닉스 경영진에 대한 시장의 호감이 효력을 발휘했다" 고 전했다.

◇ 유동성 위기는 해소〓이번 GDR 발행으로 하이닉스가 확보한 자금은 최소 1조6천억원이며, 옵션인 15%의 추가 발행이 이뤄지면 1조8천억원을 넘게 된다.

이에 비해 하이닉스가 올해 갚아야 할 빚은 5조6천7백억원이며, 이 중 3조5천억원은 이미 회사채 차환(借換)발행과 협조융자(신디케이트 론)로 막았으며 자산매각과 영업이익으로 2조원은 조달될 전망이다. GDR 발행자금의 상당 부분을 신규 투자에 쓸 수 있다는 얘기다.

◇ 남아있는 문제〓전문가들은 외자유치는 하이닉스 회생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반도체 경기가 지난 1분기 정도만 유지된다면 하이닉스는 충분히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반도체 가격은 1분기보다 40% 정도 떨어졌으며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3분기 이후 회복되리란 올초 전망을 최근 뒤집고, 올해 안에 반도체 경기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데이타퀘스트 코리아의 이희찬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하반기부터는 확실히 회복세를 탈 것이며,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 회복은 장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러나 샐러먼 스미스바니는 반도체가격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다가 4분기에 반짝 상승한 뒤 내년 1분기에 다시 하락하겠지만 2분기 이후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게 이 회사의 전망이다.

어쨌든 반도체 경기의 회복을 목타게 기다려야 하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측은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현 수준만 유지하면 외자 유치로 올해는 견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이닉스는 이달 노조가 연간 2백20억원 규모의 복지후생 비용 축소를 결의했고, 임금인상을 자제하겠다고 제의하는 등 노사가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어 추가비용 발생 요소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 증시 영향〓하이닉스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들은 지난 11일 이후 3천8백94만주를 순매도하며 지분율을 21%대에서 14%대로 낮췄다. 외국인들이 비싼 국내 원주(原株)를 팔고 해외 DR를 사기 위함이다.

SK증권 전우종 기업분석부장은 "DR 발행 성공은 하이닉스의 회생에 긍정적인 신호" 라면서 "하지만 단기적으론 물량이 늘어나 주가에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양선희.정재홍.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